독일 직업교육, 소명·책임의식 함양

2022-03-15 11:24:35 게재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은 일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런 태도에서 빠져있는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건 자기 책임이다. 그러나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목표를 달성해야 직장생활이 행복해지고 성공의 가능성도 커진다."

연 5000만 독자를 자랑하는 독일어권 최대 구직 및 경력개발 포털 '직업 성경'(karrierebibel.de)은 직업 선택 과정의 자기 책임성을 강조한다.

직업 선택 과정의 자기 책임성은 진로를 찾고 직업능력을 양성하는 교육과 훈련의 성공율과 비례한다. 한국 직업계고등학교의 70% 학생이 직업으로 이행을 포기하고 대학입시를 선택해 사회문제가 되곤 했다. 일학습병행제를 비롯한 정부 지원 직업훈련프로그램도 중도탈락이 문제다. 어떻게 청소년이 직업 선택에 자기 책임의식을 높일 수 있을까?

◆2008년 독일도 17% 직업훈련 포기 = 독일도 중퇴 및 중도탈락이 심각했다. 2008년 한해 7만명 학생들이 학교를 중퇴해 졸업장도 없이 사회에 진출했다. 아우스빌둥 참여한 청소년 가운데 중도탈락률이 17%에 달했다.

물론 독일은 경력개발의 길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 수치를 우리 사회와 바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이는 독일 사회에 충격이었다. 2008년 10월 드레스덴에서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교육정상회의가 긴급하게 열렸다. 그리고 2015년까지 학교 중퇴자를 졸업 학령자의 8%에서 4%로 줄일 것, 아우스빌둥 중도탈락률을 17%에서 절반으로 줄일 것을 목표로 세웠다.

정상회의는 대응책으로 '교육생태계'라는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전면화하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은 2005년 독일 청년실업이 최고조(ILO 실업자 기준 약 15%)에 달한 후 청년실업 대책으로 실시돼 효과가 입증됐다. 교육생태계에는 직업소명의식을 높이고 자기 책임성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 내재돼 있다.

◆직업교육이 직업소명의식 키워 = 독일의 직업소명의식은 프로테스탄티즘에 기반한다. 직업은 신의 부르심이고 이웃에 대한 봉사요, 천직으로 차별 없이 소중하다는 직업윤리다. 이를 발전시켜 직업에 대한 몰입 효과를 높였다. 장인정신의 배경이다.

지금은 종교에 기대지 않고 직업교육으로 직업소명의식을 키운다. 중학교 때 시작되는 독일 직업교육은 먼저 청소년의 잠재력을 분석해 스스로 강점 관심 능력을 자각하도록 한다.

학생들은 팀을 이뤄 종이도시를 건설하거나 지푸라기로 튼튼한 다리를 만드는 등 과제를 수행하고 전문가는 이를 관찰해 학생의 방법론적 자질, 인성적 자질, 사회적 자질을 평가한다. 학생은 자신이 잘하는 일이 있다는 자부심과 자존감을 느낀다.

다음으로 직업을 직접 체험해 자기가 소질이 있는 직업 행위가 이웃에 어떠한 행복을 주는지 확인한다. 예를 들어 직업체험에서 만든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이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이웃을 기쁘게 한다는 것을 확인한다. 청소년이 '직업소명의식'을 가진다.

◆직업선택을 스스로 관리와 책임으로 = 청소년은 중학교 1학년에 시작한 직업선택 활동에서 모은 문서를 '직업선택 패스포트'라는 파일에 문서화한다. 잠재력 분석, 직업 체험활동, 실습, 전문가 조언 등이 담긴 이 문서는 교사의 지도 아래 스스로 관리한다.

노동시장 면에서도 부모, 교사, 진로 상담기관 및 기업에서 '직업선택 패스포트'는 진로를 찾는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다. 4차산업혁명 과정에 신기술이 빠르게 도입되고 개인의 직업능력도 거기에 맞춰 지속적으로 향상돼야 하는 시기에 직업훈련의 중복 과다 등을 막고 효율성을 높인다.

'직업선택 패스포트'로 직업선택 활동을 청소년 스스로 추적할 수 있다. 부족한 것과 보충할 것을 자각하고 문제는 상담하고, 해결책을 찾고 계획하고 실행한다. 직업선택 패스포트 관리는 자기 책임 아래 자기 주도적으로 직업을 선택하도록 한다.

중학교 과정에 직업을 선택하고 평생직장이 될 수도 있는 아우스빌둥을 할 기업을 찾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독일 청소년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독일은 이를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첫번째 관문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소년이 소명의식과 자기 책임의식을 키우도록 치밀하게 청소년을 지원한다.

한국의 중학생도 인문계나 직업계이냐 진로를 결정한다. 우리는 청소년의 진로선택을 어떻게 도울까? 진로와 직업의 선택이 소명의식과 자기 책임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이 돼야 하지 않을까?

정미경 한독경상학회 아우스빌둥위원장은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단국대 초빙교수로 있다.

독일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했다.

독일 직업훈련제도, 한국과 독일 인적자본 투자의 경제적인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아우스빌둥 한국 5년 성과"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