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정부 출판 과제- 인터뷰 | 한주리 서일대 교수
"출판생태계 모두 혜택 누리는 인프라 만들자"
전자책 시장 확대되면서 도서관-출판계 갈등 "공존 노력 필요" … 출판유통통합시스템, 향후 민간 이양 논의를
■코로나19 상황은 출판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기존 출판계는 종이책 시장이 주를 이뤘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전자책에 대해서는 미온적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서점도, 도서관도 문을 열지 않아 독자들이 종이책을 접하기 어려웠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에서는 유럽 전역의 교육출판사를 대표하는 비영리 단체인 유럽교육출판사그룹(EEPG)이 나서서 전자책 등을 통해 학생들의 자료 접근을 보장하는 긴급 위원회를 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도서관의 전자책 수요가 확대됐다. 출판계는 전자책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하게 됐다. 그런 가운데 이로 인한 갈등도 벌어졌다.
얼마 전 도서관의 전자책 대출에 대해 일부 출판사들이 저작권법 위반을 주장하며 도서관에 소송을 제기했다. 도서관의 전자책 대출이 증가하면서 출판사들은 '도서관이 전자책을 다 대출해주면 책은 누가 살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도서관과 출판계는 상호호혜적 관계를 갖고 상생해야 하는 관계다. 그런데 출판계는 도서관의 전자책 대출이 출판계의 권익을 침해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도서관은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며 '소송까지 해야 하나'라고 하지만 출판계는 '여러 차례 문제제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양측 입장이 다 이해가 되지만 양측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세부적인 상황을 몰라서 빚어지는 갈등이기도 하다. 출판계와 도서관, 둘 다 출판생태계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출판유통의 문제점과 출판유통통합시스템이 나아갈 방향은 무엇인가.
출판유통은 오랜 기간에 거쳐 문제들이 누적돼왔다. 어음 거래나 위탁판매제도 등은 오래 전부터 현안이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도매상이 부도가 나는 것은 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일시적으로 지원받았을 뿐 시스템의 변화나 혁신으로 연결하지 못했다.
출판유통통합시스템은 책의 장르, 주제 등 각 책이 지닌 데이터에 기반해 투명하게 독자에 대한 분석을 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출판기획을 하고 마케팅 전략을 도출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출판계는 이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이전부터 요청해왔다.
이를 위해서는 책의 데이터가 표준화돼야 한다. 각 유통사들의 데이터가 다르면 이와 같은 분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표준화해야 데이터들이 빅데이터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의 표준 확산과 'ONIX for Books'와 같은 도서 메타데이터의 국제적 유통을 토대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매장의 전시분류와는 다른, 보다 더 세분화된 도서 내용에 대한 표준 분류체계인 테마(Thema)의 적용 등 여러 차례에 거친 유통 선진화를 통해 데이터 표준화를 진행해왔고 이를 기반으로 출판유통통합시스템을 만들었다.
핵심은 책에 대한 데이터를 입력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책이 분류되는 것이다. 책을 수출할 때도 표준 데이터에 기반해 수출할 수 있다. 책에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주제분류에 따른 데이터를 입력했기 때문에 책과 관련해 독자 연령대별, 주제별, 분야별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출판기획과 마케팅을 할 수 있다.
출판유통통합시스템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이 주체가 돼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와 서점이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며 실제로 상당수 출판사 서점이 참여했다. 다만 출판계는 출판유통통합시스템을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주도로 해야 활성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출판계 입장에서는 '출판시장은 산업 기반인데 정부가 출판유통에까지 관여하는 것 아닌가' 라는 우려를 할 수 있다. 다만 정부와 같은 구심점이 있어야 새로운 인프라가 설립되고 운영되는 측면도 있다.
초기에는 정부 지원을 통해 어느 정도 투자가 되고 관리돼야 하며 이후에는 민간 이양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앞으로 출판계가 민간 이양 시점이나 방향성 등을 논의하는 데 지속적으로 참여했으면 한다. 출판사 유통사 저자 등 다양한 관계자들이 논의해 장기적 관점에서 앞으로의 운영 방향에 관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출판계는 독자 확대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독서 형태가 변화했다. '독서'라는 개념이 종이책 독서만이 아니라 디지털 독서까지 일컫는 개념이 됐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 실태조사'를 보면 독자들이 계속 줄고 있지만 기술이 바뀌고 매체가 발전하면서 나타나는 세분화된 변화까지 해당 조사가 다 반영을 하는지 검토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과거에는 출판 영역에 웹툰과 웹소설은 포함되지 않았다. 시장이 급격히 변화하고 원천콘텐츠, IP(지적재산권)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출판계는 웹툰 웹소설까지 출판 분야로 포함했다. 그렇다면 독서에 있어서도 '종이책 전자책을 읽는 것만 독서로 봐야 하느냐, 웹툰 웹소설까지 확대해 독서로 볼 것이냐' 라는 고민이 필요하다. 후자에 방점을 찍는다면 또 다른 독서실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
출판 영역을 확장함에 따라 출판시장도 확대될 수 있다. 출판계는 항상 '시장이 만들어진 이래 최대 불황'과 같은 수식어를 달고 산다. 출판계가 이 프레임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출판산업은 전체 문화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으며 종사자들도 가장 많은 산업이다.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IP산업으로 출판 본연의 가장 잠재적인 매력에 집중할 수 있다. 또 그 매력을 발현시키기 위해 다른 미디어와 협력해 원천콘텐츠로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 출판 개념을 확장하면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는 무궁무진하다.
■OTT 활성화로 영상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출판계에 기회가 될까.
출판 시장은 항상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을 고민해야 한다. 예전처럼 '좋으니까 독서를 해야 한다'는 캠페인은 더 이상 호소력이 없다.
최근 웹툰 웹소설이 영화화, 드라마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실, 원천콘텐츠로 출판이 갖고 있던 지위였다.
출판사도 이와 같이 접근할 수 있다. 특정 소설의 시놉시스를 만들어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준비할 수 있다. 기존에 신문사를 대상으로 책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면 이를 확장해 영화화나 드라마화하기 위한 자료를 만들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출판사가 에이전트 역할을 해야 한다. 저자가 강연을 잘 하는지, 유튜브에 적합한지 등을 판단하고 2차 비즈니스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창출되는 부가가치에 대해서는 출판사와 저자가 공유하면 된다.
출판사와 저자가 표준계약서를 작성할 때, 출판사가 출판권, 배타적 발행권, 2차적 저작물 관련 권리를 갖고 비즈니스를 한다면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은 필수다.
■출판한류의 가능성과 이를 뒷받침할 정책은 무엇인가.
출판한류에 대한 지원은 계속 있었다. 출판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비즈매칭, 국내 작품을 해외에 번역, 소개하는 사이트 구축 등이 그것이다. 해당 사이트는 영문으로 책에 대해 소개하고 비즈매칭을 지원한다.
제2차 출판·인쇄문화산업 진흥계획(2007-2011)부터 국내 도서의 해외 진출에 대한 정책 지원이 계속 포함됐다.
또 출판한류가 과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시기에도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은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같은 노력들이 오랜 기간 축적돼 결실을 맺었으니 앞으로 더욱 확장돼야 한다.
출판한류를 포함해 출판계 전반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 제3차, 4차 출판문화산업 진흥계획에 출판대학원대학교 설립이 포함됐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출판한류를 비롯해 기술 발전에 따른 트랜스미디어적 관점에서의 출판기획, 새로운 독자와의 접점을 담아내는 출판마케팅, 2차적 저작물 전문가 등 지식과 관점을 갖춘 출판전문인력이 양성돼야 한다.
출판산업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누군가의 인생에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기여를 하는 산업이다. 이 산업에서 일하고 싶은 지망생이 많아져야 한다. 출판생태계에서 일하고 싶은 지망생들이 비전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정책과 지원이 절실하다.
■출판진흥원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출판진흥원에 대한 평가와 앞으로 필요한 지원 정책은 무엇인가.
출판진흥원 설립은 출판계가 염원했던 일 중 하나다. 출판계 염원에 의해 만들어진 만큼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게 출판진흥원에 협력했으면 좋겠다.
다만 출판진흥원은 새로 설립한 것이 아니라 모체가 되는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있고 이에 인력을 더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새로 설립해서 시작하는 것보다 제 역할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다른 진흥원의 경우 정관에 의해 특정 산업군이 20% 이상 이사회를 구성하지 않도록 규정한다. 그런데 출판진흥원 이사회는 특정 산업군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균형감을 갖고 독서사업 등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출판생태계는 출판사 저자 유통사 도서관 소비자 등이 네트워크처럼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소비자인 독자를 포함해 다양한 관계자들의 발언이 사업에 반영되는 방식으로 이사회가 구성돼야 한다.
또 출판진흥원 내 지원 사업들이 많은데 대부분 적은 지원금을 많은 주체들에게 지급하는 형태다. 각각의 지원 사업들을 운영하다 보면 행정적으로도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이를 정말 필요한 사업 위주로 개편하는 한편, 출판생태계 주체 모두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출판인프라를 개발하는 데 보다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인력을 양성하는 출판대학원대학교나 출판유통을 선진화하는 출판유통통합시스템 등이 대표적 출판인프라다.
또 출판진흥원이 지원하는 연구사업은 대부분 1년 안에 결과를 내야 한다. 장기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연구사업 지원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