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정부책임론' … 여당도 "문책해야"
참사 이후 정부·지자체 "책임 없어" 버티다 뒤늦게 '형식적 사과'
경찰의 112 신고 부실대응 드러나 여당도 "내각·대통령실 경질"
이태원 참사를 놓고 "책임 없다"며 버티던 윤석열정부가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났다. 시민들이 참사 징후를 알리는 신고를 수차례 했지만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 정부책임론을 더이상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관측이다. 여권에서조차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선 대대적 문책이 불가피해졌다"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참사 직후 정부와 지자체는 앞다퉈 "직접적 책임이 없다"고 강변했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지난달 30일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변명했다. 국민의힘 소속인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MBC 인터뷰에서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강변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자, 이들은 1일 일제히 사과에 나섰다. 이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오세훈 서울시장, 박 구청장이 약속이나한 듯 하루동안 릴레이 사과를 했다. 하지만 이날까지도 이들은 "죄송하다"고 할 뿐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성난 민심을 일단 달래고 보자는 대응으로 읽혔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했다. 경찰이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압사당할 것 같다"는 112신고를 11건이나 받았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시민들이 먼저 참사 가능성을 11번이나 알렸음에도 경찰이 사실상 뭉갰다는 것이다. 정부가 더이상 "책임 없다"며 버티기 어려워진 대목으로 읽힌다.
여권 내부 분위기도 빠르게 바뀌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수습 우선"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정부를 향하는 책임론을 어렵게 방어해왔지만 112 신고 부실대응 문제가 터지자 "이제는 방어가 불가능해졌다"는 반응이다. 참사에 대한 정부 책임이 불가피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국민의힘 비대위 관계자는 2일 "11번이나 신고가 들어왔는데 제대로 대응 안했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지금은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이니 당장 문책하자고 할 수 없지만, 어느정도 수습이 된 뒤에는 관련자 전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 다른 관계자도 "정말 황당한 일"이라며 "애도 기간(5일까지)이 끝난 뒤에는 내각과 대통령실 전반에 걸친 문책인사를 해야할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핵심관계자는 "112 문제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문책을 안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심을 수습하려면 문책 폭이 예상보다 훨씬 커져야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공개적으로도 부분 문책론이 나왔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2일 112 신고 부실대응과 관련 "몹시 당혹스럽고 유감스럽다. 국민 여러분께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라며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어제 112·119 신고 녹취록을 듣고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고 분노하고 있다"며 "(애도) 기간이 지나면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그에 상응하는 책임 추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국민의힘의 문책론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여당에서 대통령실보다 먼저 강도 높고, 구체적인 '문책 카드'를 꺼내면 윤석열 대통령의 선택 폭이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민심을 무시할 수 없는 여당 입장에서는 애도 기간이 끝나는 5일 이후엔 내각과 대통령실을 겨냥한 문책·쇄신론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