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홀로 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이 집을 그릴 땐 지붕에서 시작해 기둥 바닥 순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목수들의 그림은 정반대다. 기초가 되는 바닥과 기둥을 그려 넣은 후 지붕으로 올라간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으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야 한다.
주민을 위한 정책도 마찬가지다. 신속한 사업추진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주민들과의 소통과 공감이다. 이러한 일들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행정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는 무너진다.
구청장 취임 후 주민과의 소통과 민원해결을 정책의 최우선으로 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주민들의 민원사항을 검토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칡덩굴처럼 얽히고설킨 난제들은 곳곳에 있기 마련이다.
어떤 정책이 누군가에게는 선(善)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악(惡)이 될 수 있는 현실에서 갈등을 조정해 최적안을 마련하는 일은 구청장 혼자만의 힘으론 쉽지 않다. 이를 위해 민선 8기 첫해부터 공무원과 주민, 전문가로 구성된 '마포구 상생위원회'를 만들었다. 지역에서 생긴 민원과 갈등을 민관 협의로 해결하고 주민과의 합의를 통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달 조례 제정을 통해 16개 모든 동에 설치했다.
외손뼉만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듯이 다수가 모여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첨예한 갈등 수두룩한 민원 현장
그리고 최근 상생위원회 1호 사례가 있었다. '성미산근린공원 재조성'과 관련된 것이다. 성산동에 소재한 성미산의 개발과 보존을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2년여 간 첨예한 갈등을 빚어 온 민원사례다.
구는 지난 2020년부터 성산근린공원 개발계획을 통해 바닥에 덱을 놓는 무장애숲길 조성을 추진해왔으나 산을 훼손한다는 주민들의 반대로 공사는 중단된 채 갈등은 커져만 갔다. 지난달 구청 회의실을 빼곡히 매운 주민들과 함께 상생위원회 첫 회의가 진행됐다. 사업추진의 범위와 당위성 문제점 개선방안 등 자유로운 의견이 오갔다.
오랜 시간동안의 토론과 협의 끝에 '산은 산답게' 보존하고 산사태 방지 등 주민 안전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는 쪽으로 합의점에 도달했다. 주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기존의 개발계획에서 보존계획으로 정책방향을 대폭 바꾼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은 오랫동안 답답하게 얽힌 실타래가 풀린 것 같다며 소감을 나눴다. 아직 가야할 길이 남았지만 상생위원회를 통해 주민과의 묵은 갈등 해결에 첫 단추를 채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미산 사례처럼 주민을 위한 정책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공론의 장을 통해 만들어질 때 더욱 값지다. 물론 공론과 숙의의 과정은 번거롭고 지난하다. 하지만 '지지고 볶는' 지난한 공론과 소통과정에서 합의와 협력의 에너지가 나오며, 민원들도 해결된다. 구청장의 일방적 결정이 아닌 주민들의 목소리가 담길 때 비로소 진짜 정책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공론의 장' 합의와 협력 에너지 만들어
홀로 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 서로 다른 나무들이 함께 모여 비바람을 이겨내고 때로는 뜨거운 한여름 햇볕을 나눠 받으며 더욱 무성한 숲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성미산의 아름다운 숲내음이 우리 지역 곳곳에 퍼져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나아가는 의미 있는 사례들이 더욱 풍성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