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칼럼
'KIMS랩'이 어떤가? 예미랩이 아니라
베라 루빈(Vera Rubin Observatory). 올해 가동에 들어가는 미국 국립천문대 이름이다. 미국 국립천문대에 여자 이름을 붙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베라 루빈은 1970년대 암흑물질이라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아낸 미국 천문학자다. 영국의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베라루빈천문대 가동을 2023년에 주목할 과학계 이벤트 중 하나로 평가한다. 천문대의 활약을 주목한다는 거다.
베라루빈천문대는 칠레 북부의 2715m 높이 안데스 산맥 봉우리에 자리잡았다. 이 지역은 매우 건조해 광학천문대가 들어서기에 적합하다. 베라루빈천문대의 망원경은 직경 8.4m 크기 주경(primary mirror)을 갖고 있고, 남반구 하늘 전체를 사흘마다 한번씩 관측할 예정이다. 망원경 이름이 따로 있다. 기부자인 찰스 시모니(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개발자) 이름을 따서 시모니망원경이라고 불린다. 시모니망원경의 특징은 다시 말하자면, 우주를 좁고 자세히 보기 보다는 광범위하게 관측하는 거다.
넓게 볼 우주의 관측대상에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은하단의 성장이고, 두번째는 은하단과 은하단 사이의 빈 우주 공간 크기의 변화다. 은하단은 은하들이 모인 우주의 큰 구조물이다. 하나의 은하단이 얼마나 빨리 커지는지를 보면 우주에 암흑물질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암흑물질은 물질을 잡아당겨 그 결과, 우주의 구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 망원경은 은하단과 은하단 사이의 빈 공간이 얼마나 빨리 커지는지를 살펴볼 예정이다. 은하단 사이의 빈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커진다. 빈 공간이 커지는 건 우주가 팽창하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에너지, 즉 암흑에너지가 우주를 밀어내고 있어서다.
암흑물질은 서로를 잡아당기고 암흑에너지는 밀어내니, 결국 베라루빈천문대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간의 힘겨루기를 관측하게 된다. 우주 스케일의 '밀당'을 보겠다는 거다.
우주 스케일의 '밀당' 관측할 천문대
베라 루빈이 암흑물질을 발견한 건 1970년대에 외계 은하를 관찰하면서다. 은하들의 회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은하들의 회전속도는 뉴턴의 중력법칙을 위반하고 있었다. 자신의 질량에 걸맞지 않게 빨리 회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베라 루빈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 5배는 많이 있어야 그 빠른 회전을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무지(無知)에는 두가지가 있다. '알려진 무지'와 '알려지지 않은 무지'다. 암흑물질은 원래 '알려지지 않은 무지'에 속했다. 이걸 '알려진 무지'로 바꾼 사람 중 하나가 베라 루빈이다.
'알려진 무지'를 '알려진 지(知)'로 바꾸는 게 지식의 확충에서 다음 단계 일이다. 이 작업을 하고 있는 건 주로 입자물리학자들이다. 입자물리학자들은 암흑물질을 찾아 지하 1000m로 내려가 있기도 하다. 암흑물질 후보로 지목해온 가상입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이 중에서 윔프(WIMP)를 찾는 사람들은 땅속으로 들어갔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의 이현수 부단장이 공동대표로 이끌고 있는 코사인(COSINE) 실험이 그런 실험이다.
또 액시온이라는 암흑물질 후보인 가상입자가 있다. 액시온을 검출하려는 입자물리학자는 지상에서 검출 실험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 그걸 하는 사람은 IBS액시온연구단의 야니스 세메르치디스 단장이다.
암흑물질에게는 노벨상이 시상되지 않았다. 베라 루빈은 2016년 사망해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 우주적 밀당의 다른 한쪽인 암흑에너지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2010년 노벨물리학상이 돌아간 것과는 다르다. 그 같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미국정부가 새 천문대에 베라 루빈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한국이 만들 8m 이상 크기의 대형망원경에 한국 여성 천문학자의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날이 언제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잘하는 과학자를 기억하는 방법을 지금도 우리는 갖고 있다. 강원도 정선에 지난해 문을 연 지하연구소 '예미랩'이 그 경우라고 생각한다. 예미랩은 예미산 지하 1000m에 들어서 있고, 암흑물질 검출 실험과 중성미자 검출 실험이 주요 목적이다.
개척자 이름을 영원히 기억할 방법
이런 실험을 개척한 사람은 3명의 김씨이고, 이들이 1997년에 시작한 게 KIMS실험이다. 암흑물질 검출실험인 KIMS실험이 진화한 게 오늘날 COSINE 실험이다. COSINE 실험은 한국 입자물리학(실험)의 자존심과 같다. 김선기(서울대) 김영덕(세종대) 김홍주(경북대) 교수가 척박한 환경 속에서 KIMS실험을 시작했기에 오늘날 IBS지하실험연구단도 있고, 예미랩도 가능했다.
그러니 산 이름을 딴 '예미'보다 세 사람의 김씨 물리학자의 기여에 박수를 보내기 위해 'KIMS랩'이라고 이름을 바꾸는 건 어떨까 싶다. 더구나 세 사람의 정년퇴직이 가까워지고 있기에 그런 논의를 하기에 적당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