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분리" "당정일체" … '해묵은 논쟁'에 빠진 여당

2023-02-14 11:01:47 게재

김기현 '탄핵 발언' 논란 일자, 친윤 '당정일체론'으로 해명 나서

수직적 당정 회귀 우려 … 안철수측 "당정일체? 민심과 하나돼야"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국민의힘이 뜬금없는 '당정분리' '당정일체' 논쟁에 휩싸였다. 여당과 대통령실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오래된 논란이 불거진 것. 친윤이 김기현 후보의 '탄핵 발언'을 해명하려다가 '해묵은 논쟁'만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윤핵관 장제원 의원은 13일 김 후보의 '탄핵 발언'과 관련 "당정이 하나가 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지, 당정이 분리돼서 계속 충돌할 때 정권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됐고 정권이 얼마나 힘들어졌는지를 강조한 발언 같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김 후보 발언은) 당정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그런 것을 강조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당정일체론'을 제기한 것. 김 후보는 지난 11일 안철수 후보를 겨냥해 "대선 욕심이 있는 분은 (대표로) 곤란하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부딪치면 차마 입에 올리기도 싫은 탄핵이 우려된다"는 '탄핵 발언'을 했다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기념촬영하는 후보들 |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과 천하람·김기현·안철수·황교안 당대표 후보 및 최고위원 후보들이 13일 제주도 제주시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힘내라! 대한민국 - 제3차 전당대회 제주 합동연설회'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장 의원이 꺼낸 '당정일체론'에 다른 친윤의원도 가세했다. 박수영 의원은 SNS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작했다가 본인도 후회했던 소위 당정분리"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친윤이 이날 뜬금없이 꺼낸 '당정일체론'은 김 후보의 '탄핵 발언'을 해명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안철수 후보가 이날 "당 대표후보가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는 정신 상태라면, 이런 실수를 계속 반복한다면 이런 당 대표로는 결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비판하자, 김 후보를 방어해주기 위해 '당정일체론'을 꺼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정일체론'은 자칫 과거 정치권에서 횡행했던 '수직적 당정관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예상된다. 장 의원은 '당정일체론'의 근거를 들면서 "박근혜정권에서는 박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었나"라고 말했다. 박근혜정권 시절 '당정분리'로 인해 정권이 실패했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박근혜정권 시절 당정충돌은 청와대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에게 '진박 공천'을 압박하면서 촉발된 측면이 강했다. 청와대가 민심을 외면한 채 '진박 공천'을 고집하다가 여권내 분란을 키웠고, 결국 이 때문에 민심이 정권을 떠났다는 것.

안철수 후보측 윤영희 대변인은 13일 "당정이 하나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정이 민심과 하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변인은 "과거 우리당이 정권을 빼앗긴 것은 당정 불화 때문이 아니라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민심을 읽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제 밥그릇 챙겨서 생긴 일"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국민의힘 당헌은 당정관계 논쟁에 대한 '정답'을 담고 있다. 당헌 제7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규정해놓았다. 여당이 대통령에게 종속될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제8조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 '당정은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하여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한다'고 명시했다. 결국 당헌은 당정이 긴밀하게 협조하돼, 한쪽에 종속되면 안된다는 걸 명시하고 있는 셈이다.

친윤이 제기하는 '당정일체론'은 △윤 대통령이 특정 당권주자를 지원하고 △여당이 윤 대통령 눈치보는데 급급한 현실과 맞물려 당헌 7조·8조가 지향하는 '건강한 당정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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