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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거대구조

2023-02-28 13:08:57 게재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

어린 시절, 골목길 담벼락에서 만난 개미떼를 해가 지도록 쳐다본 적이 있다. 개미는 관찰자의 존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먹을 것을 나르기에 바빴다. "개미는 이 골목 끝에 큰 길이 있고 그곳에 큰 빵이 떨어져 있다는 걸 알까?" "개미를 들어 남산과 한강의 모습을 보여 주면 어떨까?"

사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모습도 개미와 하등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 은하의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고산자 김정호가 두 발로 걸어서 그린 한반도 모습처럼 우리 은하의 상상도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쏘아 올린 우주 탐사선 중 가장 멀리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 1호가 지금까지 달려간 거리는 대략 240억km로 이는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에 160배나 된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별 알파 센타우리까지의 거리를 서울의 크기에 비교한다면 보이저 1호는 이제 겨우 대문 밖을 나선 것뿐이다.


인간이 개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은 빛을 통해 먼 곳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망원경도 가지고 있다. 우리 은하가 우주 전체라 생각했던 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으로, 망원경을 통해 우리는 은하계 바깥에 수많은 다른 은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주의 한 조각”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논문 속의 그림. 부채꼴의 꼭지점이 우리가 있는 지구이고, 바깥으로 나갈수록 먼 곳이다. 부채꼴의 테두리는 지구로부터 거의 6.5억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출처: John Huchra, Harvard-Smithsonian Center for Astrophysics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 같은 우주

허블망원경이 보내온 사진 중 인류에게 가장 큰 충격을 던진 단 한장을 고르라면 단연코 '허블 딥 필드'일 것이다. 별 하나 없는 깜깜한 우주의 한 지점을 확대해 찍은 이 사진 속에는 놀랍게도 수많은 은하들이 있었다. 형형색색의 꽃들로 가득 찬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이었다. 보이지 않던 세계가 드러난 것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천문학자들은 대규모로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그 위치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꽃 한송이씩 위치를 파악해 정원의 지도를 그리는 것에 비길 수 있는 작업이었다. 은하 지도를 만들던 천문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은하들은 들판의 꽃들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지 않고, 마치 정원사가 줄을 지어 꽃을 심어놓은 것처럼 특이한 분포를 하고 있었다. 때론 꽃 한송이 심겨져 있지 않은 텅 빈 공간도 여기저기 있었다. 2차원으로 보면 그물과 비슷하고 3차원으로 생각하면 스펀지 같은 모습이었다.

1986년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연구센터가 공개한 은하지도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줄지어 있는 은하들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은하 지도는 지금도 'CfA Stick Man'이란 키워드로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수억광년 펼쳐진 우주에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신이나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저 우연일 뿐이다. 구름을 쳐다보면 세상의 온갖 모습이 다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초창기 물질과 암흑물질은 거의 균질하게 분포하였으나, 지역에 따라 약간의 밀도 차이는 있었다. 이 작은 차이로 말미암아 물질과 암흑물질은 대칭성이 깨지면서 한 곳으로 뭉치게 되고, 점점 뭉쳐 필라멘트와 같은 구조를 만들어 낸다. 암흑물질을 가정하지 않으면 우주는 지금과 같은 거대 구조를 갖지 못한다. 출처: Andrey Kravtsov, 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er Applications


그럼 은하들은 왜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스펀지 같은 구조로 분포하게 되었을까?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가 팽창해서 수소원자로 가득 찬 공간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수소가스가 스스로 뭉쳐져 스펀지 형태로 발전하려면 애초에 우주가 완전히 균질해서는 안된다. 처음부터 밀도가 높은 곳이 있어야 그쪽으로 물질이 더 많이 몰려들고, 그래야 텅 빈 곳도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이 뭉쳐지는 이유는 물론 중력이다. 일단 뭉쳐지기 시작하면 물질의 세계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나 밀도가 높은 곳은 더 높아지고 밀도가 낮은 곳은 텅 빈 공간이 된다. 물론 이는 머릿속의 상상일 뿐이다.

천체물리학자들은 이런 우주의 진화를 컴퓨터로 재현했다. 그들은 수소원자만 가지고는 우주가 스스로 진화해 스펀지 같은 구조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주의 거대구조가 제대로 만들어지려면 훨씬 더 많은 물질이 필요했다. 은하계의 회전속도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암흑물질이 그 답이었다.

좌) 뇌의 신경망 연결을 보여주는 사진. 출처: Matheus Victor, MIT Department of Brain and Cognitive Sciences / 우) 슈퍼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우주의 거대 구조의 모습. 출처: V.Springel, Max-Planck Institut fur Astrophysik


신기하게도 암흑물질과 우주 초기의 밀도 요동을 가정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우주의 거대구조가 잘 나타났다. 우주의 거대구조 자체가 암흑물질 존재의 강력한 증거란 얘기다.

미세 요동이 만든 우주의 거대구조

과학자들이 시뮬레이션한 우주의 거대구조에서도 굳이 찾아보면 다양한 모습을 찾아낼 수는 있다. 그런데 그들이 찾은 가장 신기한 것은 우주의 거대구조가 인간의 뇌 신경세포들의 연결구조와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가 초거대 생명체의 뇌 속이란 얘기는 아니다. 신비로운 우주의 거대구조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이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