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말죽거리 잔혹사'를 없애려면

2023-04-17 11:50:01 게재

정부는 12일 '정순신 사태'로 들끓는 민심에 밀려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지금 고1이 치르는 2026학년도 대입부터 정시 등 모든 전형에서 학폭 징계기록에 대한 감점조치를 의무화하고 학폭 징계 중 6호(출석정지) 이상 처분의 보존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정순신 변호사 아들이 받은 강제전학(8호) 조치의 경우 심의를 통한 삭제가 불가능하도록 했다. '대입 불이익'을 통해 학폭을 엄벌하고 경각심을 높이면 예방효과도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국무총리까지 나섰지만 새로운 건 별로 없다. 정부는 이미 2012년 '학폭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때부터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 징계전력을 기재하도록 했다. 2011년 12월 대구에서 중학생이 동급생들의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발단이 됐다. 당시 교육부장관이던 이주호 장관이 10년 지난 지금 또 같은 부처 장관이 돼 '종합대책'을 내놓은 건 아이러니하다.

대부분은 내용은 2004년 제정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에서 이미 구체화됐다.

'재탕 삼탕' 학폭 종합대책

주요 피해자 사례서 보듯, 학폭이 단순히 학생 개인들 간의 우발적 다툼이라는 온정주의나 우선 덮고보자는 식의 편의적 발상은 사태를 더 심화시킨다. 정밀하고 신속한 조사와 엄격한 심의 등을 거쳐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대책들이 교육현장에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대책이 나왔지만 '백약이 무효'라는 말까지 나온다. 교육부 자료를 보더라도 종합대책 후 학폭 발생건수는 2013년 1만7000건에서 지난해 6만2000건으로 늘어났다. 정부는 굳이 전 정부 집권시절에 학폭 발생건수가 대폭 늘어났다는 식의 통계수치도 언급했지만 종합대책 시행 후 코로나19가 시작했던 2020년을 제외하곤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학생부 기록이 수시 등에 반영되면서 가해자측의 대응 역시 늘었다. 학폭이 '교육의 영역'에서 '사법의 문제'로 확장됐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가해학생의 행정심판 청구'는 학폭 학생부 기재 이전인 2011년 0건이었다. 2013년 244건에서 지난해 889건으로 3.6배 늘어났다. 행정소송 건수는 2020년 111건에서 지난해 265건으로 2년새 2배 이상 증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폭은 법률시장에서 하나의 사업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학폭 전문'을 내세워 홍보하는 법무법인이나 변호사 사무실이 부쩍 늘었다. 한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올린 "이것만 잘해도 성공보수가 꽤나 두둑이 주어진다"는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장 교사들은 "학폭 사건을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가해 학생이 잘못을 깨닫고 피해 학생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도록 하는 교육적 과정"이라며 "지금은 양측이 사실관계만 다투느라 학교와 교육청이 일종의 '사건조서'를 쓰는 데 급급한데, 정작 정부는 처벌 강화와 소위 '낙인찍기'만 밀어붙이니 답답하다"고 했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교권 강화, 인성교육 강화 등을 통해 '학교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겠다는 '입에 발린' 대책을 덧붙였다.

단계적 지속적 노력 필요

학폭을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공언'보다 단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학폭 심의위원으로 변호사를 못 구하고 인성부장 등 어려운 일을 기간제 교사에게 떠넘기는 게 현실이다. 학교운영위원회 교사회 등 교육자치 기구들을 법제화해 실질적인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고 자율적인 권한을 줘야 한다. 핀란드 등 성공적인 학폭 예방프로그램을 적극 벤치마킹해도 좋을 듯하다.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가 있다. 1970~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학교 내 폭력적 상황을 묘사했다. 학교도 사회의 일부다. 지금의 학폭은 사회 변화에 따라 복잡 다양해졌다. 학폭 문제도 기성세대, 특히 지도층과 권력자들의 모범 없이는 해답이 없다. 헌법정신인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가치관을 학교 안팎에서 생활화해야 한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무한 경쟁시대에 변형된 폭력사회를 두고 어떻게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차염진 기획특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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