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실리 챙기는 일본, 위기 자초한 한국

2023-04-18 11:55:07 게재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2일 일본이 가격상한을 넘겨 러시아산 석유를 구입했다며 가장 가까운 아시아 동맹국이 미국 주도 반러시아 동맹에 균열을 냈다고 폭로했다. 일본 공식 무역통계를 인용해 일본이 올 1~2월 러시아 석유 약 74만8000배럴을 총 69억엔(약 5200만달러)에 사들여 배럴당 약 69.5달러에 구매했다는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호주 등이 시행하는 러시아 석유 가격상한인 배럴당 60달러를 크게 넘은 수준이다.

일본의 '배신'은 러시아 타스통신이 가장 먼저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지난 3월 16일 일본이 러시아 석유를 서방 동맹국이 합의한 가격상한 이상으로 구매했다고 지적했다. 일본 재무성 통계를 인용해 지난 2월 러시아 석유 23만2000배럴을 약 21억엔(약 1590만달러)에 구매해 배럴당 약 68.5달러라고 밝혔다.

배신자로 찍히면서도 러시아 LNG 사수한 일본

일본의 배신은 러시아가 유도한 측면이 있다. 러시아는 일본이 투자한 사할린-2 프로젝트의 지분 유지와 연계해 상한을 넘는 가격으로 원유구매를 요구했고, 일본은 이 지분을 포기할 수 없어 러시아 요구를 수용했다. 사할린-2 프로젝트는 러시아 극동지역 사할린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일본 미쓰이물산과 미쓰비시상사가 지분 22.5%를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7월 1일 서방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사할린-1, 2 프로젝트 관련 법령을 발표했다.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일본을 포함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 '비우호 국가'가 보유한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비상이 걸렸다. 일본은 사할린-1 프로젝트에도 지분을 30% 갖고 있다. 원유 수입의 약 90%를 중동에 의존하는 일본의 경우 사할린 프로젝트는 중동 이외 지역의 귀중한 에너지 구매 원천이다. 일본이 수입하는 LNG 중 러시아산 비중은 약 1/10을 차지하고, 대부분이 사할린 프로젝트에서 생산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즉각 "에너지 안전보장에 극히 중요한 프로젝트"라며 사할린-1, 2 프로젝트에서 떠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기업 엑손모빌과 영국기업 셸은 사할린 프로젝트에서 철수했지만, 일본은 지분 유지에 총력을 다했다. 일본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러시아는 지난해 9월 사할린-2 프로젝트 일본 지분 유지를 승인한 데 이어 11월 사할린-1 프로젝트 지분 유지도 승인했다. 일본은 G7 국가 중 유일하게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아 러시아에 화답한 모양새를 보였다.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크게 낮춘 반면, 일본은 지난해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오히려 늘렸다. 일본의 작년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량은 전년보다 4.6% 증가했다. 나아가 일본은 지난해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후 11월까지 러시아와 무역규모가 2021년 같은 기간보다 13% 늘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17% 감소했다.

일본과 대비해 우리나라 에너지 외교는 참담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무역적자는 수입단가 상승이 주도했다. 특히 에너지 수입단가가 64.5% 오른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배신자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러시아산 저렴한 LNG를 사수한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에너지 가격 상승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결과다.

우크라에 포탄 제공 의혹 드러나 러시아 보복 우려

뿐만 아니라 유출된 미국정부 기밀문건에서 우크라이나에 포탄 제공 의혹이 제기돼 심각한 안보 위협이 제기됐다. 한국산 155㎜ 포탄 33만발을 72일내에 우크라이나로 공수하는 일정이 적시된 문건이 공개됐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이를 어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러시아는 "문건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미국에 155㎜ 포탄 10만발 수출보도가 나오자,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나 탄약을 제공하면 러시아와 관계가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탄제공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어떤 식으로든 러시아의 보복이 우려된다는 전문가 분석이 나온다. 1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며 급속히 경기침체로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리스크가 우리 경제에 또 하나의 위협으로 떠올랐다.

장병호 외교통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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