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100배나 더 빠를 한국의 은행위기
미국 은행위기의 최종 승자는 JP모건 체이스였다. 1분기 실적발표 결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미국내 2위 은행으로 꼽히는 뱅크오브아메리카마저 예금이 200억달러 줄었고, 3위 씨티은행과 4위 웰스파고도 각각 335억달러와 214억달러의 예금 감소를 겪었지만 유독 JP모건은 371억달러 증가했다. 미국 중소 지역 은행의 붕괴로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돈을 옮기자 4대 은행 모두 순이자이익(NII)과 매출이 증가해 주당이익(EPS)이 느는 등 큰 혜택을 봤지만 예금의 이동 순위에서는 단연 JP모건이 꼽혔다. 가장 안전한 '은행 중의 은행'을 찾는 뱅크런의 속성이다.
미국 은행위기 최종 승자는 글로벌 1위 은행인 JP모건 체이스
지역은행, 중소은행에서 10위권 이상의 대형은행으로 예금이 이동하고, 이 대형은행들에서도 JP모건과 같은 최상위 은행, PNC 파이낸셜과 같은 우량은행으로 예금이 몰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부는 금리를 높게 주는 머니마켓펀드(MMF)로 갔다. 실적발표 결과 미국 은행위기는 잦아든 것으로 보이지만 SVB 사태 이후 예금이 빠져나간 속도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례가 없는 수준이다.
미국 10위 금융기관인 찰스슈와브는 1분기 말 기준 예금액이 3257억달러로 지난해 말(3667억달러)보다 410억달러(11%)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감소 폭은 30%다. 찰스슈와브는 1분기에 순이익 16억달러로 전년 대비 15% 늘었지만 예금 유출을 막지 못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장부상 채권 손실(만기보유증권 등 평가손)이 약 280억달러에 달해 SVB 사태 이후 뱅크런 우려가 큰 곳으로 꼽혔다.
2008년 미국 월가발 금융위기 이후 금융 시스템 붕괴를 예방하기 위해 주요 20개국(G20) 칸 정상회의는 2011년 금융안정위원회(FSB) 및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를 통해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글로벌 은행(G-SIBs)'을 선정했다. 2022년 말 기준 30개 은행이 있는데 이중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CS)는 미국 은행위기 여파로 파산해 UBS에 합병됐다. 미국에는 모두 8개 은행이 G-SIB 은행인데 4대 은행 외에 골드만 삭스, 뱅크오브 뉴욕 멜런, 모건 스탠리, 스테이트 스트리트(STT) 등이다. 이중 STT는 미국내 자산 규모 12위이자 세계 최대 수탁은행인데 고객 예금은 1분기 말 기준 총 2240억달러로 작년 12월 대비 5%, 1년 전 대비 11% 줄었으며 1분기에 118억달러의 예금 이탈이 발생했다.
독일은 도이치방크 1개 은행이 G-SIB로 선정돼 있는데 상업용 부동산 대출 과다 등으로 위기설이 돌며 주가가 15% 이상 빠지기도 했다. G-SIB급 은행에서 급격한 뱅크런 등이 일어나면 그 부정적 파급력은 전 세계에 미칠 수밖에 없다. G-SIB는 중소 규모 은행보다 자본금(자본보전완충자본)을 2.5% 더 쌓아야 한다. 또 G-SIB 추가완충자본으로 1.0~3.5%, 보통주자본비율 4.5%, Tier1자본비율 6.0% 등 총합 11.5~14.0%까지 추가자본 적립의무가 있다. 유사시 채권자 손실부담(Bail-in)을 통한 자본재확충 등 총손실흡수능력규제(TLAC)를 준수해야 한다. 이런 규제가 있음에도 CS는 파산했고 도이치방크는 흔들렸으며 미국은 은행위기가 터졌다.
세계경제는 여전히 인플레이션과 전쟁 중, 비상계획 꼼꼼히 점검할 때
우리나라 은행 중 G-SIB급 규제를 갖춘 곳은 없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미국 워싱턴DC 출장 중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SVB 파산과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경우 뱅크런 속도가 "미국보다 100배는 빠를 것"이라고 평가했다. 과거에는 은행 문을 닫고 이틀이면 예금 분산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소셜미디어 등의 발달로 2시간 안에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 혼란이 많은 숙제를 안겼다"며 "일일 차액결제에 대한 담보비율을 높이는 등 디지털 시대에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자본추가적립(경기대응완충자본·스트레스완충자본·특별대손충당금제도)를 준비 중이다. 한은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부동산 프로젝트 관련 부실에서 오는 금융불안이라는 세 전선을 마주하고 있다. 미국 기준금리가 불과 1년 새 0%대에서 연 5%로 급등했고 0.25%p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인상폭은 역사적으로 금융위기를 몰고 왔다. 2~3개 은행파산 정도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세계경제는 여전히 인플레이션과 전쟁으로 긴축 중이다. 비상계획을 꼼꼼히 점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