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양강국 장보고 후예가 연다 | ② 인천~제주 세월호 뱃길 점검하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신뢰 너머 가장 안전한 뱃길 만드는 게 우리 임무"
세월호참사 후 선박안전운항관리 책임 전담 … 비욘드트러스트 엔진결함도 사전 발견
4월 19일 오후 6시53분.
정동화 '비욘드 트러스트'(Beyond Trust)호 선장이 배의 복원성까지 계산된 서류에 서명하고 김민수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운항관리자가 확인 서명하면서 오후 5시부터 시작한 출항 전 안전점검이 끝났다.
공단 제주지사 방문을 위해 비행기 대신 비욘드 트러스트호를 선택, 운항점검 과정에 참여한 김준석 해양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비욘드 트러스트에 대한 출항 전 안전점검을 하며 운항관리원들은 약 8000보를 걷는다"며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뱃길을 만들자는 공단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배의 이름처럼 신뢰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타실(브릿지)의 해기사들은 선박 곳곳에서 출항 작업 중인 선원들과 무전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제주항으로 떠날 막바지 작업에 집중했다.
◆출항 전 안전점검으로 사고예방 = 2021년 12월 10일 첫 출항한 카페리여객선 비욘드 트러스트호는 세월호 참사 이후 끊어졌던 인천~제주 뱃길을 7년만에 이으며 주목받았다.
비욘드 트러스트는 신뢰 그 이상을 추구하겠다는 이름 그대로 세월호 참사로 나타난 누적된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염원이 담겼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대형 카페리선의 경우 해외에서 수입한 중고선에 의존했지만, 이후엔 '연안여객선 현대화펀드'를 포함한 정부지원 등에 힘입어 상당부분 국내 조선소에서 새 배를 건조하고 있다.
비욘드 트러스트는 산업은행 해양진흥공사 등 정책금융기관의 자금지원으로 건조됐다. 선박건조는 HD현대의 계열사 현대미포조선에서 진행했고, 엔진도 HD현대중공업의 힘센엔진을 장착했다.
710억원을 투입한 비욘드 트러스트는 2만7000톤급 카페리선으로 길이 170m, 너비 26m, 높이 28m로 국내 최대 규모 연안여객선이다. 여객 810명(선원까지 총 854명), 승용차 487대를 동시에 싣고 최고 시속 25노트(46㎞)로 운항할 수 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조선산업 자존심과 선박금융을 결합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인천~제주 항로는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를 쉽게 벗어나지 못 했다. 비욘드 트러스트호는 그동안 다섯차례에 걸친 엔진 결함으로 운항중단과 운항재개를 반복했다.
선사(하이덱스 스토리지)도, 운항관리를 하는 정부도, 선박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KR)도, 엔진과 선박을 제작한 조선소도 인천~제주 항로를 운항하는 배에서 발견된 작은 결함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난 2월 4일 운항점검 과정에서 다섯 번째 엔진결함이 발견됐다. 제주 외항 묘박지에 대기하고 있다가 인천으로 출항하기 위해 제주항으로 재입항 중 이상현상을 발견했다.
하이덱스 스토리지의 전광천 본부장은 "다섯 번의 엔진결함 중 네 번은 운항점검 과정에서 사전에 발견한 것"이라며 "해양교통안전공단 등과 함께 운영하는 안전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제주항의 선석(배를 정박하는 곳)이 부족해 비욘드 트러스트는 오전에 승객과 화물을 내린 후 항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선석이 비는 오후 5시 즈음 다시 제주항으로 들어가 여객과 화물을 싣고 인천으로 출항한다.
중단됐던 선박 운항은 엔진결함을 정비한 후 2월 22일 화물운송부터 시작했다. 여객운송은 지난달 29일 재개했다.
김준석 이사장은 "인천~제주 항로는 세월호 참사로 끊겼다가 7년만에 복원된 특별한 항로로 해양수산부 등 정부는 물론 선박을 건조한 조선소, 선박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이 긴밀한 협조체제 아래 안전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은 여객선 안전운항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으로서 다른 어느 항로보다 더 안전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제주지사를 방문하는 방법으로 비행기가 아닌 비욘드 트러스트호를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화물 적재 후 선박복원성까지 확인 = 비욘드 트러스트호에 대한 운항점검은 조타실에서 각종 통신 레이더장비 승무정원 등을 확인한 후 화물과 차량 적재 고박상태 점검, 기관부 점검, 선체외관과 만재흘수선 점검을 거쳐 복원성 검증 등의 절차로 이어졌다.
복원성은 차량이 계근대를 통과하면서 자동 측정된 화물무게가 전산으로 처리돼 계산된다. 화물무게를 자동측정하는 계근대는 세월호 참사 이후 도입됐다. 복원성을 정확히 산정하기 위해 화물 무게를 빠뜨리지 않고 파악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고, 정확하고 신속히 화물과 차량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 도입했다.
윤수민 비욘드 트러스트호 기관장은 "이 배는 선박복원성이 좋은데, 최악의 경우에도 확보하게 돼 있는 선박 복원성 기준보다 오늘 확보한 복원성은 더 커 안전한 상태"라고 말했다.
해수부 해사안전감독관, 해양교통안전공단 운항관리센터장 등 안전관리 전문가들은 선사와 함께 조타기와 레이더, 전자해도 등이 정상 작동하는지 점검부터 시작했다. 통신기 수신감도와 화재감지장치 항해등 선박의 각종 센서와 평형수탱커 등 필수점검 9개 항목 등도 살폈다.
조타실 점검을 마친 후 갑판으로 나가 비상소집장소에 비치하게 돼 있는 구명조끼, 구명뗏목 등을 점검했다. 긴급 피난에 사용해야 할 구명뗏목은 세월호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비욘드 트러스트의 구명뗏목은 폭 15m 크기로 한 개당 100명이 탈 수 있는 것을 10개 비치했다. 총 정원 854명보다 많은 1000명이 탈 수 있는 규모다. 1년에 한 번씩 구명뗏목을 터트려 정상작동 여부도 점검하고 있다.
갑판 점검을 마친 후엔 차량과 화물 고박상태 점검이 이어졌다. 컨테이너박스도 바닥과 연결한 잠금장치로 고정돼 있었다.
전기차 화재에 대응하기 위한 질식소화포도 준비돼 있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도 빠지지 않고 한 대씩 고박돼 있었다.
해양교통안전공단 안전관리자 김민수 차장은 "이 배는 갑판별로 화물 무게를 측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갑판을 블록별로 구분해 더 정밀하게 무게를 측정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엔진 등 기관실 점검은 선박에 상주하고 있는 HD현대중공업 직원 2명도 함께 했다. 선박에는 엔진 하자에 바로 대응할 수 있게 여유 부품 54종을 기관실에 비치해 두었다. 법정 기준은 9종이다.
비욘드 트러스트가 인천~제주를 왕복하면서 사용하는 연료량은 90톤 규모다. 19일 연료 400톤을 보충해 현재 보유량은 520톤이었다. 최대 720톤까지 연료를 실을 수 있지만 선박이 흔들리면서 연료가 넘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80% 미만으로 관리한다.
피스톤 행정을 점검하면서 엔진 안에 물을 포함 이물질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기관 점검은 선박출항 6시간 전에도 진행한다. 비욘드 트러스트가 일반 여객선보다 강화된 사전 점검을 하는 것이다.
조시원 해양교통안전공단 인천운항센터장장은 "한국선급의 통합검사지원시스템(ISC)을 통해 선박엔진을 24시간 점검하고 있다"며 "엔진과 프로펠러 회전수, 엔진온도 압력 등 실시간 체크한 정보는 LTE(4세대 통신)망을 타고 HD현대의 현대글로벌서비스, 한국선급, 본선 세 곳에 동시에 전달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객선 운항관리는 해양교통안전공단, 선박검사는 한국선급으로 일원화됐다.
박선준 한국선급 총괄팀장은 "비욘드 트러스트호 엔진에서 발견된 결함들에 대해 조치한 사항은 모두 확인을 마쳤고, 지금 시점에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관실 점검 후엔 배에서 내려 외관을 살폈다. 선체가 파괴된 곳은 없는지, 흘수선(선체가 물에 잠기는 한계선. 선체에 페인트색을 달리해 구분해 놓았다) 높이도 안전한지 확인했다. 비욘드 트러스트는 30톤 무게가 더해지면 흘수선이 1㎝ 내려간다고 했다.
외관검사까지 마친 후 안전관리자들이 다시 조타실에 모였다. 6시 50분, 출항 10분 전에 선미램프가 닫히고 화물적재 작업이 마감됐다.
이번 항차에 승선한 인원은 최종 150명, 차량은 110대였다.
6시 53분. 선장이 복원성까지 계산된 출항전 운항점검표에 서명하고, 해양교통안전공단 안전관리자가 확인 서명하면서 출항 전 점검은 끝났다.
줄잡이들이 배와 부두 안벽을 연결한 줄을 풀고 비욘드 트러스트가 제주항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오후 6시 58분이었다.
공동기획 : 내일신문·신해양강국국민운동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