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국 국익에 충실한 한미정상회담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후 윤 대통령은 "북핵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자평했다. 대단한 성공이라는 대통령실의 평가도 뒤따랐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악은 피했지만 얻은 게 없는 회담"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북한의 핵 공격 시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전력을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어음'을 받은 대신,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선봉에 확실히 서기로 한 '현금'만 주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우리 기업이 기대했던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의 불확실성 해소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의 여지를 남겼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미국편에 섬으로써 관련국들의 반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확장억제 '어음' 받았지만, 한반도 긴장 더 강화될 가능성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후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에서 우리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 성과도출에 주안점을 두어 △확장억제 △경제안보 △인적교류 △첨단기술 △지역·글로벌 협력 등 5개 핵심 분야에서 다각적 동맹관계를 강화했다고 자평했다. 특히 확장억제 문제와 관련해 정상차원의 공동합의문인 '워싱턴선언'을 최초로 발표함으로써 대북억제를 위한 양국간 지난 1년의 협의와 노력의 결실을 집대성하는 동시에 양국 최고 수준의 의지를 표출했다고 강조했다.
과연 그런가. 물론 이번 정상회담에서 국민의힘 일각이나 국내 극우세력이 주장하는 핵무장론을 가라앉힌 점은 나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적어도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장억제에 대한 '워싱턴선언'의 실효성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한국형 확장억제', 이른바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의 실효성은 '북한의 핵공격'이 실행됐을 때나 확인할 수 있어서다. 특히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확대'와 관련해 그 비용을 우리측이 부담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실 미국이 '확장억제'를 강조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한국의 NPT조약 준수를 강제하기 위한 전제였을 수 있다. 윤 대통령조차 "한국은 지금부터 수차례 실험을 통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3월 17일 일본 게이오대 연설) 한 마당에 미국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건 한국내 핵무장 여론을 진화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긴장은 더 첨예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회담에서 합의한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한반도 전개'는 그렇지 않아도 미중 전략경쟁과 진영대결 틈새에서 군사적 긴장을 키워오던 북한을 자극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윤석열정부가 밀어붙이는 '힘에 의한 억지'라는 논리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되면서 한반도 평화는 더 먼 일이 돼 버렸다.
또한 이번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과 관련해 미국 입장에 확실하게 섬으로써 우리의 입지를 스스로 좁혀버렸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 규탄'했고, 중국과 관련해서는 '대만해협 평화'와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현상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말하자면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가치동맹' 강조하지만 국익 앞서는 가치는 없어
그럼 한국의 이익은 어디 있는가. 남북한 대치 강화가, 그리고 중국·러시아와의 불편한 관계 심화가 우리 국익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미중 전략경쟁 격화로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미국의 울타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반대급부라도 제대로 챙겼어야 했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 먹거리와 직결되는 IRA와 반도체과학법에 대해서는 '긴밀한 협의를 계속하겠다'고 합의하는 데 그쳤다. 구두선(口頭禪)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미국이 '핵협의그룹(Nuclear Consultative Group, NCG) 신설' 같은 의제를 던져준 것도 결국 경제적 수혜를 줄 수 없다는 시그널이 아니냐는 의혹을 보낸다.
대통령실은 '가치동맹 강화'를 정상회담의 중요한 성과로 꼽았지만, 우리 국민 입장에서는 '국익'에 앞서는 '가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