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은행, 내년 3월이 중요한 시험대
은행업은 신뢰산업이다.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는 뱅크런을 관리하지 못해 파산했다. 생존비결은 뱅크런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SVB 파산 파급력은 상당했다. 파산 다음날 뉴욕에 본사를 둔 시그니처뱅크에도 예금인출 요청이 쇄도했다.
금융당국은 즉각 개입했다.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재무부는 두가지 조치를 발표했다. 첫째, SVB와 시그니처뱅크 예금자가 인출을 원하면 즉시 전액을 지급한다. 둘째, 연준이 긴급대출 프로그램을 시행해 은행이 보유한 국채나 모기지채권을 시장가치가 아닌 액면가치로 인정해 대출한다. 금융당국의 발 빠른 조치로 시장은 진정된 것처럼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죽어가는 한국의 부실은행들을 그냥 내버려뒀던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응과 대별된다. 미국의 은행 부실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징표다.
미실현 손실 2조달러, 모든 은행자본 전멸시킬 수준
현재 상황은 미국 은행시스템에 대한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시장의 과잉반응이냐, 아니면 금융시스템 내부에 더 큰 문제가 존재하느냐. 이를 알기 위해선 기준금리 변화가 은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은행 재무상태표에서 예금은 부채이고 대출은 자산이다. 금리가 제로에 가까웠던 2022년 초 미국 전체 은행의 총자산은 24조달러 정도다. 이중 3조4000억달러는 예금자에게 상환가능한 현금이다. 6조달러는 국채나 모기지채권 등 유가증권이다. 11조2000억달러는 대출이고 나머지는 기타자산이다. 전체 은행의 총자본은 2조달러 규모다.
2022년 이후 기준금리가 0~0.25%에서 4.75~5.00%로 4.75%p 급등했다. SVB 파산이 눈길을 끈 이유는 기준금리 상승으로 은행의 자산가치가 하락했지만 이런 내용이 재무상태표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 KPMG는 파산 14일 전 회계감사에서 '적정의견'을 내면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자산가치 변동을 따져봤다. 연구팀은 높아진 금리에 맞춰 은행자산을 조정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미국 은행의 자산가치는 장부보다 2조달러 낮다"며 "미국 은행이 보유한 모든 자본을 전멸시킬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의 전방위 노력으로 부실은행에서 벌어질 뱅크런을 늦추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미실현 손실을 안고 있는 부실은행에 대한 지원은 그 자체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대형 은행들은 고객이 고정적이라 변동금리 대출로 금리가 상승하면 수익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중소형 은행들은 예금인출을 막기 위해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연준의 새로운 대출 프로그램 금리는 시장금리 4.5%와 비슷한 수준이다. 만약 은행의 이자수익이 그 이하로 떨어지고 저비용성 예금이 이탈하면 이 은행들은 순이자 마진 손실로 서서히 말라죽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중소형 은행들의 경우 상업용 부동산대출 손실로 인해 더 많은 자본을 잃을 수 있다. 2022년 말 기준 상업용 부동산업계는 투자자와 금융기관에서 약 5조6000억달러를 조달했다. 은행들이 대출해준 규모는 2조7942억달러이고 그중 70%인 1조9472억달러는 중소형 은행에서 나갔다.
문제는 상업용 사무실의 공실이 늘어나는 데 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증가로 빈 사무실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건물들을 계속 짓는 바람에 공실률이 치솟았다.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은 18.7%까지 올라갔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는 올해 1분기에 29.4%까지 증가했다. 상업용 부동산가격도 최근 2년간 고점 대비 25%나 폭락했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 대한 채무불이행이 줄을 잇고 있다. 2025년까지 만기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1조5000억달러로 차환 위험이 높다.
중소형 은행, 상업용 부동산대출로 더 큰 손실 입을 수도
연준이 은행 담보를 액면가로 평가해 대출하는 기간은 1년이다. 따라서 2024년 3월은 미국 은행에게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만약 연준의 계획이 연장되고 의회가 예금보험을 추가 확대한다면 부실 은행은 더 늘어날 것이다. 가장 걱정스러운 점은 금융당국의 장기지원에도 불구하고 일부 은행들이 수익성 회복경로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금융당국이 국민혈세로 도박을 한 셈이 된다. 도박으로 위기를 돌파할 확률은 매우 낮다. '서서히 진행되는 위기'(slow-rolling crisis)에 짜임새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부동산PF 위기에 직면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