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국스타트업과 실리콘밸리가 만나면

2023-05-11 11:18:01 게재
한국 경제의 오늘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대기업의 성과에 달려 있지만, 내일은 혁신적인 기술과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스타트업의 성장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스타트업은 기술과 아이디어만 가졌다고 혼자 클 수 없다. 벤처자본과 대기업을 포함한 세계시장이 뒷받침해 주어야 하며 이런 보육과정을 치밀하게 중개해줄 액셀러레이터(accelerator)가 필요하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이런 창업 생태계가 고도로 발달한 곳이다.

5월 1일 제주 중문 부영호텔에 여의도와 판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스타트업 기업인과 벤처투자자들 약 300명이 모였다. 한국엔젤투자협회가 주최한 '글로벌 팁스(TIPS) 스타트업 포럼'에서 정보를 교환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참석한 것이다. TIPS는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지원제도(Tech Incubator Program for Startup)로 민간이 투자를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10년 간 1700여개 스타트업이 이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실리콘밸리가 한국 경제와 스타트업 생태계 주시

이번 TIPS 포럼의 하일라이트는 2일 아침 진행된 실리콘밸리 큰손들과 대화의 장이었다. 제10회 국제전기차엑스포와 연계해서 열린 이날 포럼 제1부에서는 미국 벤처투자자들의 발표가 있었고 2부에서는 TIPS가 선정한 14개 스타트업의 기업발표가 잇따랐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서로를 파악하고 소통하는 기회였다.

온·오프라인을 통해 기라성같은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인들이 참석했다. '플러그앤플레이(Plug & Play)' 창립자 사이드 아미디 회장, 글로벌 벤처투자가 팀 드레이퍼, '10X캐피탈'의 러셀 리드 CIO, '쿼너지 솔루션'의 CEO 엔조 시뇨레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중 플러그앤플레이는 미국만 아니라 세계의 기업가들이 네트워크를 원하는 스타트업의 플랫폼 기업이다. 구글이 2인 스타트업 기업이었을 때 아미디는 플러그앤플레이 빌딩 사무실을 제공했고 구글이 성공해서 나간 후 그 빌딩은 '행운의 빌딩'이란 별칭을 얻었을 정도다. 아미디는 이런 에피소드를 전하며 한국 스타트업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월가의 소문난 투자전략가 러셀 리드는 직접 포럼에 참석했다. 팬데믹, 미중갈등과 우크라이나전쟁, 기후변화, AI 등 급변하는 투자환경에서 전문적인 벤처투자가들은 어떤 결과를 내는지를 그래프로 보여줘서 눈길을 끌었다. 그는 한국 연금공단 컨설팅 경험 등 세계적 투자전략가로 일했던 경험을 내세우며 TIPS 프로그램에 대해 큰 관심을 드러냈고, 14개 스타트업 기업발표를 듣고 질문과 논평을 아끼지 않았다. TIPS 포럼 행간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실리콘밸리 벤처업계가 한국 경제와 스타트업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번 글로벌 TIPS 스타트업 포럼에 시너지효과를 더한 것은 별도로 열린 대학생 비즈니스 플랜 발표 경연대회였다. 버클리대학 창업센터소장을 비롯해 한미 양국 대학 창업 관계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경연에는 13개 한국 대학팀이 아이디어를 겨루고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았다. 장차 창업 후보자들로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포럼 연단이 아닌 로비의 장외 토론에서도 미중 대립 등 변화하는 세계경제 환경에서 스타트업의 역할에 대한 주문이 쏟아져 여운을 남겼다. 고영하 엔젤투자협회 회장은 "중국의 기술추격이 무섭다. 지금 미중갈등으로 추격속도가 느려진 이틈에 기술격차를 벌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국현 NPI 대표도 "대기업은 성장에 한계가 있지만 스타트업은 100%, 200% 성장이 가능하다. 나라의 미래를 여는 것은 스타트업"이라고 강조했다.

벤치마킹한 이스라엘보다 나은 스타트업 생태계 꽃피길

세상에 거져 되는 일은 없듯이 글로벌 TIPS 포럼 준비도 끈질긴 노력이 필요했다. 한국엔젤투자협회(대표 고영하), 실리콘밸리비즈니스포럼(공동대표 문국현, 오사마 하사나인), 제10회전기차엑스포조직위원회(대표 김대환)가 거의 1년에 걸쳐 합심해서 준비했기에 실리콘밸리의 큰손들을 불러들이는 게 가능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실리콘밸리에서 교훈을 얻고 또 직접 교류할 대화의 문을 연 것은 소망스러운 일이다. TIPS는 이스라엘 창업지원 제도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이스라엘보다 나은 스타트업 생태계가 이 땅에 꽃피기를 기대한다.
김수종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