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갈수록 불투명한 '상저하고'

2023-05-16 10:38:38 게재

상장사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공시됐다. 과반 이상 기업이 지난해 1분기 실적보다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악화된 실적이지만 전분기인 4분기보다는 호전되는 모양새다. 시장 예상치 이상 선방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경제성장률 전망치 등 각종 거시지표는 부정적이고 대내외 외교통상 환경은 한국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연초 기대한 '상저하고'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주요 업종 대표기업 영업이익 1/3 토막

반도체 전자 자동차 조선 정유 건설 플랫폼 등 14개 주요 업종별 2~4개 대표기업 35개사 실적을 살펴보면 지난해 동기대비 매출은 제자리걸음이다.(0.6% 증가) 이들 기업 전체 영업이익은 지난해에 비해 67%나 급감했다. 거의 1/3 토막 났다. 외형성장도 멈췄고 수익성이 악화된 셈이다. 지난해 1분기 이들 기업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1.9%였는데 올해는 3.9%로 급락했다. 35개 기업 매출 합계는 상장사 전체 매출의 45% 규모다.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전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 업종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화학 등이다. 1년 만에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반도체는 매출이 반토막났고 영업실적은 적자전환했다. 정유도 매출은 다소 늘었지만 영업이익이 71%나 감소했다. 이밖에 항공도 지난해 화물특수로 좋은 실적을 보였지만 올해는 영업이익이 전년도보다 1/3 감소했다. 철강도 원자재가격 인상에 따라 영업이익이 43% 줄었다.

실적이 나아진 곳은 자동차 건설 플랫폼 정도다. 자동차는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와 미국시장 공략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주요 건설사도 지난해보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했다.

반도체 쏠림현상은 1분기에도 여전했다. 반도체 실적이 좋으면 전체 기업 실적이 좋은 것처럼 보이고 반도체가 나쁘면 전체 실적이 나빠 보이는 착시현상이 두드러졌다. 1분기 영업적자를 기록한 삼성전자 반도체부문과 SK하이닉스를 제외할 경우 나머지 기업의 매출은 플러스 성장을 했다. 영업이익률도 두배 가까이 높아졌다. 두 기업은 전년도 1분기에 11조3100억원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7조9800억원 영업손실로 전체 영업이익 수치를 좌우했다.

중국과 교역량이 많은 업종의 부침이 심했다. 대중국 수출이 줄어들면서 디스플레이와 화학 소비재(화장품) 등의 실적이 악화됐다.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에 대한 기대는 1분기에 현실화되지 않았다. 미중 전략경쟁에 따른 세계경제 블록화 영향도 있지만 국내 산업의 대중국 경쟁력 약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최근 조사에서는 중국의 대한국 교역경쟁력이 저위기술뿐 아니라 고위기술 제조업에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중국과 엇나가는데 중국을 대체할 만한 시장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연초보다 낮아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1.8%에서 3개월 만에 1.5%로 하향 조정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은 일단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삼성전자 반도체 담당 임원은 "감산효과가 2분기부터 나타나고 하반기부터 수요가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SK하이닉스도 비슷하다. D램 등 메모리반도체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는 컴퓨터와 모바일 기기 수요를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계는 컴퓨터 수요 저점이 상반기에, 모바일 기기는 2분기 또는 3분기에 형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최근 이들 기기 교체주기가 길어지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 주는 혁신 있어야 반등 가능

반도체경기 의존성을 당장 줄일 수는 없다. 반도체 수요 확대 시점을 점검하면서 경제구조를 다양화하고 고부가가치화하는 산업전환이 필요한 시기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기업들이 그동안 빠른 추격자(패스트 팔로워) 전략에서 선도자(퍼스트 무버) 전략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다. 정책당국은 혁신적 아이디어가 상업화 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명시된 규제 외에는 모두 허용한다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라 기업들의 비용절감 정책이 중요해졌다. 내부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조직을 정비해야 한다. 이같은 정책이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주는 혁신으로 이어져야 반등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범현주 산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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