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위민(爲民)정치와 민주주의 후퇴
지금은 개방된 청와대 비서동 이름 관련 일화다. 2004년 12월, 노무현정부는 기존 비서동 옆 온실자리에 새 비서동을 짓고 '여민관(與民館)'으로 이름을 붙였다.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빌린 말이다. 맹자는 "군주가 백성이 즐거워하는 것을 좋아하면 백성도 그의 즐거움을 함께 하고, 백성이 근심하는 것을 걱정하면 백성도 그의 걱정을 함께 한다"(樂民之樂者 民亦樂其樂 憂民之憂者 民亦憂其憂, 양혜왕 장구 하4)고 했다.
2008년 이명박정부는 비서동 이름을 '위민관(爲民館)'으로 바꾼다. 세종의 '위민정치'를 본받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언론은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로 받아들였다. 2017년 문재인정부는 출범 이틀 만에 다시 '여민관'으로 이름을 되돌린다. 당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위민(爲民)은 아무래도 저희가 주체가 되고 국민이 객체가 되는 개념이고 '여민(與民)'은 국민과 대통령이 함께 한다는 것"이라고 개명 이유를 설명했다.
윤석열정부 1년, 각종 민주주의 지표 뒷걸음질
'위민이냐, 여민이냐'만 놓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철학은 위민인 것 같다. 실제 윤 대통령은 수시로 '국민을 위해서'를 강조해왔다. 일제의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가 '국민을 위해' 대국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했다.(3월 16일자 아사히 마이니치 니혼게이자이 서면 인터뷰) 노동·교육·연금개혁은 "'국민을 위한' 3대개혁"이라고 정의했다.(3월 7일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
어떻게 보면 '위민'은 보수주의와 잘 맞아떨어진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정치인 에드워드 버크는 "시민들이 정치엘리트를 믿고, 정치엘리트들의 자율적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엘리트가 전문적인 지식으로 '시민들을 위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제다.
윤 대통령도 전형적인 엘리트주의자로 알려졌다. 대선시절 그를 만난 모 전직 국회의원은 "윤 후보 머리 속의 학교는 서울법대, 서울대, 기타로 구분되더라"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윤 대통령이 주로 서울법대 출신 국무위원들과 의견을 나눈다는 얘기며, 유별난 검찰 출신 선호 경향도 엘리트주의의 한 단면일 터다.
따지고 보면 반대여론이 높은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을 '국민을 위한 해법'이라고 강변한 것도, 이 문제에 대해 "국민을 충분히 설득했다"(4월 24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고 자신한 것도 윤 대통령의 '위민철학'에 뿌리를 둔 발상이라 하겠다.
하지만 '위민정치'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바로 민주성 결여다. '민주(民主)'는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주권자)이라는 뜻이다. 이에 반해 '위민'은 권력자 중심의 철학이다. 이때 민(民)은 시혜의 대상일 뿐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생각 속에는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할 가능성이 배태돼있다. 전두환 같은 독재자들도 툭하면 '국민을 위해'라고 했던 점을 상기하면 이 점은 명확해진다.
윤석열정부 1년,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각종 관련 지표도 역주행 중이다.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세계언론자유의 날(5월 3일)에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 따르면 2023년 대한민국 순위는 47위였다. 전년보다 4단계 떨어져, 수년째 지켜오던 아시아 수위 자리를 대만(35위)에 내줬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부설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니트(EIU)'가 2월 발표한 세계민주주의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전년보다 8단계나 떨어진 24위를 기록했다. 이 지표들 또한 윤 대통령의 '위민철학'과 관련이 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민주주의 시대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현실 돼서야
그렇다고 노무현정권이나 문재인정권이 민주주의를 잘 실천했다는 게 아니다. '김남국 코인사태'나 돈봉투 사건이 보여주듯 민주당 역시 국민의 삶과 거리가 먼 기득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이름만 '여민'으로 바꾼다고 '국민과 더불어' 하는 게 아니다. 진짜 '국민과 더불어 즐겼다'면 5년 만에 정권을 헌납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정부 1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평가를 정권담당자들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의 불행도 민주주의 후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역사로부터 버림받게 돼 있다.
"평생 상명하복 문화의 조직 속에서 국가가 부여한 권력을 휘두르던 이가 이렇게 다기한 민주주의 시대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라는 대선 당시의 우려가 현실이 되어서는 나라도 대통령도 불행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