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전경련 말로만 혁신해서는 안된다

2023-05-22 10:55:26 게재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1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혁신안을 발표했다. 우선 이름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꾼다고 한다. 1961년 5월 군사정변 직후 창립될 때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혁신안에 따르면 전경련은 앞으로 윤리헌장을 제정하고 '정치·행정권력 등의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배격'할 것임을 명시할 계획이다. 정경유착으로 여겨질 우려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윤리경영위원회'가 검토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대·중소기업 상생 등의 내용도 담긴다고 한다.

명칭 바꾸고 '정치·행정권력 등 압력' 배격하는 혁신 시도

김병준 직무대행이 취임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구상 자체는 일단 고무적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전경련 하면 '정경유착'의 이미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이런 이미지는 1961년 군사정권 시절 출범할 당시부터 생겨나더니 경제성장 과정에서 더 굳어진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 등을 통해 그 '본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국정농단 사건의 경우 전경련은 청와대 요구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에 필요한 거액의 자금을 회원사들로부터 걷어들이는 통로나 다름없었다. 친정부 성향 보수단체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전경련은 '권력의 지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경제단체라 할 수 있는 전경련을 이런 상태로 내버려두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운 시대흐름에 어울리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특히 대기업들이 경제발전에 올바르게 기여할 수 있도록 조타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들은 윤석열정부 들어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 있다. 이를테면 반도체·배터리·백신·미래차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투자하는 대기업은 투자액의 최고 25%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소상공인들이 코로나19 직격탄에 신음하고 있는데 대기업들은 수조원의 세금을 감면받는 것이다. 경기가 어렵고 세금징수도 부진한 상황이기에 이같은 지원은 더욱 도드라진다. '특혜'라고 불러도 그다지 틀리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도 비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노조도, 시민단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의 구별도 없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과 중국이 거세게 대립하는 가운데 전략산업을 둘러싸고 국제경쟁의 격랑이 갈수록 치열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한국이 낙오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파격적인 지원을 해줘서라도 한국의 주요 산업과 대기업들이 굳건하게 성장하고 일자리를 창출해주기를 모두가 기대한다. 마치 손홍민이나 조성진, 방탄소년단을 성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대기업들에 대한 세제지원에 대해 온국민이 한마음으로 지지한 것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대기업들은 요즘 전례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책임도 무겁다. 기업과 산업을 부지런히 발전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국민의 혈세를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편법 탈법경영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등의 일탈행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각오와 결심은 대기업 스스로 하기는 역시 어려울지 모른다. 대기업의 경영구조나 총수 중심의 황제경영이 너무나 두텁기 때문이다. 더욱이 총수 일가 가운데 상당수는 건전한 상식과 시민의식도 없이 굴러들어오는 이익을 탐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다.

대기업과 경영자, 특히 총수일가의 올곧은 기업가정신 이끌어야

이같은 전근대적 행태를 답습하는 한 대기업도, 국가경제도 장구한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젠가는 역풍이 불거나 큰 장애를 만나 좌초할 수도 있다. 따라서 대기업과 경영자, 특히 총수일가의 올곧은 기업가정신이 요구된다.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지원하는 바로 이때 그런 정신을 확고하게 다져야 한다. 그런 역할을 앞장서 이끌 수 있는 곳이 바로 전경련이다.

전경련이 그런 책임을 다하면 향후 한국경제의 모습이 달라질 수도 있다. 전경련의 혁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할 바는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말로만 달라져서는 안된다.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대기업의 혁신을 선도해야 한다. 사족 삼아 덧붙이자면 권력과 손잡고 출범할 당시의 이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혁신과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아무래도 전경련이라는 이름을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 같다. 이해는 되지만, 기왕이면 다른 이름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