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구조조정 '시기'와 '선택'이 중요하다

2023-05-23 11:48:41 게재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고강도 긴축이 지속되고 있다. 대중국 수출 감소에다 반도체 업황 부진까지 겹치면서 한국 경제는 침체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기초체력이 약한 기업들은 이미 경영위기에 직면했다.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3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파산 신청은 총 121건에 달했다. 지난해 3월 81건과 비교해 50% 늘어난 규모다. 1~3월까지 누계는 326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 216건보다 51% 증가했다. 원금상환·이자유예 등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올해 9월부터 종료되면 곳곳에서 부실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

"내년 말까지 기업 구조조정 계속될 것"

가장 위험한 곳이 건설사들이다.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미분양이 늘고 있다. 공사대금을 조달할 수 없게 된 중소형 건설사와 분양수입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시행사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설사들이 일주일에 2~3곳씩 부도가 난다"며 "내년 말까지 이런 기업 구조조정이 계속될 것"이라는 게 최고위 금융당국자의 전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험이 가시화돼 대형 및 중견건설사의 부도사태가 발생할 경우 부정적 파급효과는 크다. 대형 및 중견건설업체 1개사가 부도날 경우 전문건설업체는 수십개에서 수백개까지 연쇄 도산할 수 있다. 롯데그룹과 메리츠금융그룹이 1조5000억원 규모의 공동펀드를 조성하면서 롯데건설은 PF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그렇지 못한 위기의 중견건설업체들이 널려있다.

최근 금감원은 빚이 많아 특별 관리해야 할 대상인 '주채무계열'을 선정했다. 주기업체가 태영건설인 태영이 신규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중흥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은 주채무계열 중 총차입금 순위가 지난해 20위 21위에서 17위 19위로 각각 상승했다. 부동산PF 관련 우발채무 위험 등은 아직 회계에 반영되지 않은 잠재리스크다.

부동산PF 대출에 관여한 중소 증권사와 저축은행, 상호금융 등도 가슴을 졸인다. 아직 초입단계에 불과하지만 불황이 본격화되면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해온 이들 금융회사는 대출금 미상환으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35개 증권사의 부동산PF 대출 연체율이 10.38%로 집계됐는데 부동산PF 문제가 없는 대형 증권사를 제외하면 일부 중소형 증권사 연체율이 2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들도 자금줄이 막혀있긴 마찬가지다. 이 회사들은 투자를 받아야 그 돈으로 연구·개발하고 회사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 입장에선 고수익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기 때문에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이 채권금융기관 중심의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했지만 한계가 많다. 채권금융기관의 입장이 서로 달라 자율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의 변화·발전의 주요한 측면은 내부요인이다. 회사경영 상태는 최고경영자가 가장 잘 안다. 신규차입이나 투자유치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최고경영자의 선택지는 몇개 없다. 법원의 도산절차를 선택하거나 법원 밖에서 자율적인 수단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 전자는 회생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고 다시 재무상태가 좋아지면 정상적인 상태로 복귀하는 것이다. 후자는 워크아웃이나 채권금융기관과의 자율협약 등을 통해 채무조정을 해서 상태를 개선시키는 방법이다. 두가지가 다 안되는 최악의 경우에는 파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회사 살리기 위한 이해당사자들의 합의와 노력 필요

구조조정에선 시기와 선택이 대단히 중요하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호황 때 구조조정을 단행해 불경기를 여유 있게 넘기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는 최고경영자가 위기의식을 제대로 못 느낄 때 발생할 수 있다. 타이밍을 놓쳐 구조조정 작업에 늦게 착수하면 더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 회사의 현 상태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불경기 상황에서는 선제적으로 구조조정 작업에 나서는 것이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회사 경영진과 노동조합 등 이해당사자 모두의 합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들은 '사원주주제'를 통한 '증자'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이사 한 사람이 문제해결을 위해 뛰는 것보다 임직원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함께 주주가 되어 마케팅과 연구개발(R&D)에 집중한다면 구조조정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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