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중갈등 속 커지는 '대통령리스크'

2023-06-07 11:39:32 게재
미중갈등 심화는 분단 구조에 억눌린 한국 외교에 이중삼중의 고통을 강요한다. 북한의 핵·미사일위협에 한미연합 군사훈련 강화와 확장억제로 맞서는 '외곬 친미외교'로 한미일과 북중러의 신냉전 기류는 갈수록 굳어지고, 남북관계는 미중 갈등 프레임의 종속변수로 떨어진 형국이다.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며 '가치외교'를 명분으로 미국의 대중포위전략 구도에 최선봉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안보를 확고히 다지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섣부른 판단은 '피할 수 있는 위험'을 자초하는 심각한 자충수로 귀결될 우려가 갈수록 커진다. 안보와 경제가 결코 뗄 수 없는 불가분 관계가 된 현실에서 정부의 배타적 대중국정책은 대중무역 급감, 무역수지 적자 등 경제상황 악화로 나타나고 있다.

역대 보수·진보정권의 국익 우선 '실용·균형외교' 흐름 역류

대미·대중외교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며 '분명한 친미선택'의 당위성을 강변하는 윤 대통령 정책은 전임 문재인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부의 정책 방향을 송두리째 뒤집는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 개척 이래 역대 정부는 (다소 편차는 있지만)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실용을 지렛대 삼아 엄중한 환경에서도 나름 '국익을 겨냥한 균형'을 추구하며 외교지평과 대외경제 지평을 넓혀왔는데 그 흐름을 역류하는 것이다.

미중 대결구도가 선명해진 현실에서 선제적으로 올라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국제관계는 그리 단순하거나 일면적이지 않다. 이분법적 잣대에 따라 도덕적으로 편가름하는 것도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미중갈등이 윤 대통령이 속단하는 것처럼 미국의 승리로 단기간에 해결되거나 양국이 정면충돌하는 파국으로 전개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은 히로시마 G7정상회의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냉각된 미중관계가 곧 해빙될 것이라며 "우리는 중국과 분리(디커플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제거(디리스크)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다변화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를 비롯해 스타벅스, JP모건, 애플,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의 거물급 CEO들이 줄지어 중국을 방문해 극진한 환대를 받고 고위당국자들을 만났다. 14억 거대시장을 놓칠 수 없다며 반기를 든 민간기업의 거침없는 행보에 미 행정부는 뾰족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동맹국인 한국에 중국의 마이크론 축출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지 말라고 압박하는 것과 대비되는 명백한 이중잣대다. 당분간 미중관계는 '디커플링'과 '디리스킹'이 혼재하고 교차하는 혼돈스런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대중견제 파열음'은 자국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세계전략에 군말 없이 따르는 나라들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국가들이 국익을 쫓아 중국·러시아와 '중립'을 지키며 독자외교를 펼친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4월 18일자)는 '초강대국 간 고래싸움에서 살아남는 법'이란 흥미로운 기사에서 미·중·러 어느 편도 들고 싶지 않은 중립국가들, 이른바 '비동맹국가들'의 외교행태를 집중 분석한 글을 게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미중 대결에서 비동맹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국가 중 경제규모가 큰 25개 국가로 트랜젝셔널25(T25)라 지칭한 이들 국가그룹에는 인도 브라질 튀르키예,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이집트 이스라엘, 동남아 아세안의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이 포함돼 있다.

방한 중국 외교부 아시아국장 '4불가방침' 통보 보도

중국정부는 최근 한국이 대만 등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하거나, 미일의 중국봉쇄 전략에 적극 동참한다면 북한문제 등 여러 방면에서 협력하기 어렵다는 이른바 '4불가' 방침을 전했다고 '한겨레신문'이 보도했다. 류진쑹 아시아 담당 국장이 지난달 22일 방한했을 때 통보했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부인했으나 이튿날 확인을 요청받은 중국 외교부 반응은 달랐다. 마오닝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중국은 이미 핵심관심사에 대해 한국 쪽에 엄숙하고 전면적으로 엄정한 입장을 표명했다"며 한중관계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책임은 중국 쪽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윤 대통령이 대만문제를 콕 집어 언급해 자극하는 등 미국만 바라보며 돌진하다 중국과 감정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는 '대통령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