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압수수색 제도개선 시급하다
지난 2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학술대회가 열렸다. 대법원 형사법연구회와 한국형사법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압수·수색영장 실무의 현황과 개선방안'이란 세미나다. 언뜻 보기에 재미없고 법조계의 그렇고 그런 행사인듯 하지만 일반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중요한 주제를 다루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요지는 압수수색 사전심문을 도입해 구속영장 심사처럼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심사할 때도 수사기관 등 관련자들을 불러 대면심리를 할 수 있도록 규칙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또 휴대폰 등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시 '집행계획' 등을 추가해 선별압수의 원칙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검찰 등 수사기관들은 발칵 뒤집혔다. "수사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강력 반대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6월 1일 시행예정이었지만 대법원은 의견수렴을 이유로 규칙 개정을 미루고 있다.
영장발부 확대에 사생활 침해 우려도 확산
학술대회에서 드러났듯 양측의 입장차는 극명하다. 대법원은 늘어나는 압수수색에 따른 기본권 침해 우려를 들고 있다. 수사기관들이 증거수집을 위해 너무 지나치게 무차별 압수수색을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휴대폰 등 전자장치에 관한 것이다. 검찰 등은 휴대폰 압수수색을 통해 톡톡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최근의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뿐 아니라 과거 박근혜정부 국정농단 사건 등이 관계자들의 휴대폰 속에서 결정적 증거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휴대폰에는 범죄와 관련없는 공적·사적 정보들이 담겨 있다. 수사기관들이 수사편의를 위해 무차별 압수수색하다보면 이런 정보들이 노출될 위험이 크다. 실제 편법적으로 수집된 정보를 이용해 검찰이 별건수사를 벌이거나 정보가 외부로 유출돼 악용될 우려도 많은 게 사실이다. 정치권이나 사업가들 뿐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휴대폰을 자주 바꿔야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2011년 87.3%이던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2022년에는 91.1%, 일부기각도 발부로 포함하는 경우에는 무려 99.1%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일선 판사들 입장에선 검찰이 요구하는 영장서류만 보고 발부할 수밖에 없는 데 대한 문제의식이 쌓여왔다고 한다. 토론자로 참석한 현직 판사는 "전자정보 압수수색으로 인한 시민의 사생활 침해 위험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이 크다"고 했다.
반면 검찰 등은 수사의 비밀이 새나갈 우려가 있고 수사가 지연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실효성도 없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마약이나 성범죄 등에서 보듯, 여러 이름으로 저장된 파일을 특정 검색어로는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현직 검사는 영장신청건수가 늘어난 것은 "인터넷 물품사기, 보이스피싱, 인터넷 명예훼손 등의 사건에서 피의자 특정을 위한 영장이 대부분이고 기본권 침해 정도가 큰 주거지 사무실 및 신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비중이 낮다"고 반론을 폈다. 또 "이미 피압수자의 참여권이 보장돼 있다"며 법원이 휴대전화 수색 자체를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보장하라는 국민 입장에서 대안 만들어야
영장과 관련된 법원과 수사기관들의 '영역싸움'은 오래됐다.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 제도가 도입될 때 특히 심했다.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판사가 피의자를 법정에서 직접 심문하는 절차로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제도가 정착된 건 30년도 안됐다. 영장실질심사는 1995년 12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1997년 1월부터 시행됐다. 2008년부터는 구속영장이 청구된 모든 피의자가 심문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검찰은 당시에도 "수사의 효율성을 해친다"며 극력 반대했다.
박정희정권 수립 이후 개정된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검사의 영장신청권이 들어간 것도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써 해석되고 있다. 일제 때부터 이어져온 경찰 등의 인권침해를 막기위한 조치였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수사권 보장'은 모순된 개념은 아닐 것이다. 복잡화된 현대 사회에서 교묘한 범죄를 수사하기 위한 수사기관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가지만, 그만큼 수사과정에서의 인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게 일반 국민의 법감정이다. 법원과 검찰은 기왕에 제기된 압수수색 제도개선에 대해 유야무야하지 말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실무적'으로 현명한 대안을 만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