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리스크 정당'의 미래는 없다

2023-06-13 11:00:58 게재

리스크에 리스크가 꼬리를 문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송영길 전 대표의 셀프 출두,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 투기 논란, 이래경 혁신위원장 낙마, 정청래 의원의 국회 상임위원장을 둘러싼 몽니 등등 열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리스크 정당'이라 이름 붙여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국회 제1당 더불어민주당 얘기다.

의원 자율투표였다지만 돈봉투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윤관석 이성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부결 또한 민주당에게 또다른 리스크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방탄'은 이제 민주당의 전매특허처럼 돼버렸다.

국민의힘은 이런 민주당 사정에 반색한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들을 가리켜 "우리당의 귀인들"이라고 했다. 이들 덕분에 국민의힘이 덜 후지게 보인다는 거다.

소명의식 사라지고 '도덕불감증' '탐욕과 부패'만 남아

실제 국민 눈에 비친 민주당 모습은 '도덕불감증' '탐욕과 부패' '오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강조한 김대중 정치, '특권과 반칙없는 세상'을 염원한 노무현 정신을 간판으로 내건 민주당이 왜 이렇게 됐을까.

일부 전문가들은 촛불항쟁 이후 대선과 지방선거, 총선의 연이은 압승을 원인으로 꼽는다. 시대를 거스르던 이명박 박근혜정권에 대한 주권자들의 분노를 자신들에 대한 지지로 착각하면서 스스로를 무장해제 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0.73%p 차이'의 지난해 대선결과 또한 이들의 확증편향을 강화시켰다. 패배에 대한 반성 대신 움켜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자평은 뭐든 해도 괜찮은 '만능 면허증'이 됐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민주당 추락의 근저에는 '소명의식 실종' '사명감 부재'가 똬리를 틀고 있다. 과거 김대중 시절의 민주당은 '민주화 완성'이라는, 그리고 노무현 시절 민주당은 '구시대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그 시절에도 도덕적 위기가 있었고, 때로는 부패문제로 곤욕을 치렀지만 그래도 민주당이 내세운 가치는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가치의 정치'는 지금 눈을 씻고 찾아보려도 찾을 수 없다. 그냥 눈살 찌푸리게 하는 '욕망의 정치'만 널려 있을 뿐이다.

그들 또한 특권층이 된지 오래면서도 마치 서민의 대변인인 양 흉내를 낸다. 국민들이 '김남국 사태'에 더 뿔난 이유는 거액의 가상자산 투기 의혹이나 국회 회의 중 거래라는 몰상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서민 코스프레가 기름을 부은 측면이 있다.

게다가 그들은 아직도 민주주의 투사인양 착각하고 있다. 국민의힘이나 도긴개긴인데도 '독재의 후예들과 싸우니 우리는 정당하다'는 논리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준다.

민주당 지도부들이 가졌던 '희생'과 '도전정신'도 사라졌다. 과거 노무현은 지역구 서울 종로를 내던지고 사지인 부산에서 도전장을 냈고, 손학규는 적진인 경기 분당에 출마해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전통을 세웠다. 하지만 이재명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인천 계양 을에 출마해 자기 살길을 도모했다. 대선패배와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은커녕 '선사후당(先私後黨)'의 새로운 전통을 만든 셈이다.

물론 민주당 정치가 이렇게 된 데에는 지지층의 책임도 없지 않다. 이재명이 대선후보와 당 대표가 된 과정도, 정청래 김남국이 어이없을 정도로 당당한 이유도 이른바 '개딸'로 표현되는 극성 팬덤이 뒷배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 또한 시대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당 주류의 팬덤정치 의존증은 극단적 지지층을 제외한 나머지를 등 돌리게 만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 폭망은 확률 문제 아닌 시간 문제

2차세계대전 이래 프랑스 정치를 좌우로 양분해왔던 사회당과 공화당은 2017년 총선에서 사실상 몰락했다. 직전 집권당이던 중도좌파 사회당계는 250석 넘는 의석을 잃고 32석으로 폭삭 망했다. 중도우파 공화당계는 131석을 얻어 제1 야당 지위를 유지했지만 기존 200석에서 크게 쪼그라들었다. 기득권정치의 완벽한 침몰이었다.

집권 국민의힘이나 제1야당 민주당 모두 혐오의 대상이 된 우리 정치상황도 그때 프랑스와 진배없다. 그럼 내년 총선에서 한국 정치판도는 어떻게 될까. "민주당이 자멸할 것"이라는 용산 대통령실 바람대로 될까. 아니면 "경제 등 실정으로 정권이 심판받을 것"이라는 민주당 기대대로 될까. 그것도 아니면 프랑스처럼 둘 다 외면받을까.

분명한 것은 민주당이 지금처럼 리스크를 켜켜이 쌓아서는 또 다시 버림받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이대로 가면 민주당 폭망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남봉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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