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와 함께 하는 과학산책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 유전학에 길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기후가 급변하며 세계 각지에서 기르고 있는 작물을 더 이상 같은 조건에서 키우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시작된 것과 같은 폭염은 향후 80여년 간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기후변화시나리오 모델 중 하나에서는 대전은 37일에서 122일로, 제주는 7일에서 96일로 폭염일수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평균기온은 약 6℃ 가량 상승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면 우리 식탁에 오를 식재료가 남아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대책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시도를 포함해 식량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측면에서 발전하고 있다. 유전학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뜨거운 환경에서도 잘 견디는 식물, 물이 적은 환경에서도 잘 자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식물, 기후변화로 인해 새롭게 등장할 병충해도 무탈하게 견뎌낼 수 있는 식물을 연구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그리고 이렇게 잘 견디는 식물과 그렇지 않은 식물을 비교해 대체 어떤 유전자의 차이, 즉 유전변이가 식물을 더 튼튼하게 해주는지 찾아낸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키우던 작물에서 이 유전자를 바꿔치기함으로써 작물이 폭염과 가뭄, 병충해를 견디면서도 잘 자랄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작물을 빠르게 개량하려는 것이다.
원하는 방향으로 작물개량할 준비 끝나가
이처럼 인류가 수만년에 걸쳐 야생식물을 작물로 바꿔온 과정을 불과 몇년 안에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유전체 기반 육종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유전체 분석 기술의 발전이 있었다. 유전체라 불리는 생물의 DNA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은 불과 20여년 만에 100만배 가까이 저렴해졌다.
실제 인간의 고품질 유전체 지도를 작성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세기 말 3조원 정도 소요됐으나 현재는 수백만원 수준으로 싸졌다. 같은 기술을 활용해 거의 모든 동식물의 유전체 지도를 높은 품질로 확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를 기반으로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작물의 유전체 지도를 확보하는 연구가 이미 수없이 진행된 바 있다. 그 덕분에 인류는 전례없는 수준의 작물 유전체 정보를 확보하게 됐다.
또 유전체 정보를 기반으로 온갖 유전변이를 조사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작물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개량할 수 있는 준비가 끝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발전 덕분에 실제로 밀 조 감자 토마토 등의 유전체 지도가 고품질로 개선됐으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유전변이가 수만개 이상 확보됐다.
새로 찾아낸 유전변이 중 몇몇은 실제 맛과 향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몇몇은 폭염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 더 잘 견디는 것이다. 이미 우리가 작물로 키우고 있는 다양한 식물의 고품질 유전체 지도가 확보되고 기존 기술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유전변이를 낱낱이 조사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이러한 유전변이를 기반으로 기존 작물을 개량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우리가 먹는 작물이 아닌 야생식물을 빠르게 개량해 작물화하려는 시도도 지속되고 있다. 예컨대 야생벼 중 환경변화와 병충해에 더 잘 견딜 수 있는 종이 있다면, 이러한 야생 쌀의 맛과 향, 생산량 등을 개선해 더 키우기 쉬운 쌀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또 매년 모내기를 하고 수확하면 다시 심어야 하는 벼 대신, 한번 심으면 몇년이고 계속해서 수확할 수 있는 벼를 개발할 수 있다면 모내기에 필요한 노동을 훨씬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시도는 이미 실현되고 있다. 튼튼한 야생벼에 우리가 알고 있는 맛과 향, 생산량에 중요한 유전변이를 도입함으로써 몇년 만에 야생벼를 작물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한번 심으면 몇년 동안 수확할 수 있는 벼는 이미 수만명의 농부가 기르고 있으며 이를 개량하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농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야생식물 작물화 시도도 계속 진행 중
이처럼 생명과학 관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를 둘러싼 수많은 생물을 개량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런 기술 중 상당수는 현재로서는 연구실 수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련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해 인류가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반 기술로 자리잡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