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수능 오염수, 그리고 민심의 바다
본격 무더위를 앞두고 바닥민심이 뒤숭숭하다. 오랜 경기부진에 일자리와 가계부채, 생활물가 상승 등 먹고사는 문제가 삶을 옥죄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짜증을 보태고 있어서다. 수능 5개월을 앞두고 불거진 '킬러문항' 논란, 방류를 앞둔 일본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문제는 모두 정치권이 긁어 만든 부스럼이다.
불난 민심에 기름을 끼얹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꼭지까지 찼다. 대통령과 원내 1,2당 지지도가 30%대에서 옴짝달싹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여론조사 지표 아래 민심은 훨씬 거칠다. "여건 야건 싹 갈아엎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오히려 힘이 실린다.
여권 스스로 프레임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꼴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로 시작된 수능파문은 점입가경이다. 논점도 '학교수업 내 출제'에서 '교과과정 내 출제' '킬러문항 배제'를 거쳐 '사교육 카르텔 사법처리'로 옮기면서 논란을 키우고 있다. 사실 킬러문항에 대한 대통령의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사교육이 문제라는 것도 백번 옳다. 하지만 입시를 5개월 앞둔 '부적절한 시기'에, 대통령의 질타로 시작된 '부적절한 방식'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부여당은 대통령 말을 주워 담으려다 발이 꼬여버렸다. "윤 대통령은 입시비리 사건을 수도 없이 다룬 입시전문가"라는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입시에 대해서는 저도 (윤 대통령에게)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는 이주호 교육부장관의 발언은 이 사태의 본질이 어디 있는지를 보여준다. 5공 시대극에나 나올 듯한 권력 주변의 모습은 지금 이곳이 '민주화된 대한민국'이 맞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문제가 국민 걱정거리로 자리잡은지도 오래다. 소금사재기가 멈출 줄 모르고, 횟집이나 수산시장을 찾는 손님이 뚝 끊겼다. 그런데 정부여당의 태도가 오히려 부아를 돋우고 있다. "소금사재기를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는 윤 대통령의 단언이나 오염수에 대한 불안감을 괴담 탓으로 몰고가는 여당을 보며 국민들은 "일본정부의 앞잡이냐"고 되묻는다.
국제원자력기구나 일본정부 하는 짓을 뒷짐지고 보면 될 일을 정부여당이 앞장서 나서면서 스스로 '프레임'에 갇힌 꼴이 됐다. 프레임의 덫에 한번 걸려들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어렵다. 프레임 이론(frame theory)의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는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활성화된다"고 했다. 정부가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 "과학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강변할수록 국민 머릿속에는 오염수 프레임만 더 강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수능이나 오염수 민심 모두 장기화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당장 수능 킬러문항 기준의 모호성 때문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지만, 이 이슈는 6월 모의평가 결과 발표, 9월 모의평가를 거쳐 본수능 성적이 나오는 12월까지 계속 될 전망이다. 사실 난이도 문제는 쉬워도 어려워도 시비가 생기기 마련이다. 만약 이번 수능에서 난이도 실패로 대입에 혼란이 야기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정부여당 몫이 될 것이다.
오염수 문제도 마찬가지다. 본격 방류가 시작되면 국민 불안감은 훨씬 커질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먹는 문제'는 언제나 가장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야당 또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이슈화시킬 게 분명하다. 자칫 일본정부가 만든 문제로 한국정부와 국민이 길거리에서 충돌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정치권이 리스크가 된 상황에서 민심이 폭발한다면
일찍이 공자는 노나라 군주 애공에게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니,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또한 배를 뒤집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夫水所以載舟 亦所以覆舟)"며 민심의 무서움을 경고한 바 있다.(孔子家語 五儀解편)
그런데 국민의힘은 이런 바닥민심이 총선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 수능이나 오염수 문제를 국민 눈높이에서 보려하지 않고 대통령 눈치 살피는 데만 급급하고 있을 게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민심을 잘 헤아리는 것도 아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고, 제국도 아니다"고 한 17세기 사상가 볼테르의 말처럼 국민의힘에는 '국민'이 없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국민과 '더불어'할 의지가 없다. 이처럼 정치권이 최대 리스크가 된 상황에서 민심이 폭발하면 어떻게 될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통령부터 앞장서 갈등을 키우는 정치권 모두를 확 뒤집었으면 후련하겠다는 민심을 알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