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반대'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한다면
일본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사용할 해저터널 공사가 26일 완료됐다. 또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를 사실상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최종 보고서'를 전달하기 위해 다음달 4일 도쿄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날 예정이다.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원전 오염수가 이미 한국 수산물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수상시장인 노량진수산시장과 가락농수산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줄어 썰렁해졌다,
오염수 방류로 직격탄 맞은 국민의 수산물 사랑
수산물 소비량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연간 1인당 68.4kg(2020년)을 소비한다. 세계에서 포르투갈에 이어 2번째로 많다.(2019년 기준) '스시의 나라' 일본은 37.8kg이며 스페인 39.6kg, 중국 46.6kg이다.
우리 국민들의 수산물 사랑은 유별나다. 생선뿐 아니라 어패류 갑각류 해초류 등 다양한 수산식품을 말리고 굽고 찌고 절이고 졸이거나 날 것으로 먹는다. 다른 식품과 비교해도 수산물 소비량이 높다. 우리나라 1인당 쌀 소비량은 67.2kg이며 육류는 65.1kg이다. 물론 전체 수산물에는 식용뿐 아니라 전복 먹이와 같이 다른 용도 소비량도 포함돼 있지만 수산물의 먹거리 중요성은 낮아지지 않는다. 수산물 자급률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2011년 84.6%에 비해 20%p 가까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68.1%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국민들의 수산물 사랑이 원전 오염수 방류로 직격탄을 맞게 됐다. 환경운동연합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72.3%가 '오염수 해상 방류가 시작되면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고 대답했다. 이미 노량진과 가락수산물시장 이용객이 확 줄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때문에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 종사자와 수산물 판매자, 식당, 유통업자들이 피해를 보게 생겼다. 5월 일본 수산물 수입량도 30% 줄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일본이 개발한 다핵종제거설비(ALPS)의 성능 문제다. 이 설비가 제대로 작동해서 세슘137 등 방사성 물질 64종을 걸러낸다는 것이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한 도쿄전력의 주장이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2051년까지 약 30년에 걸쳐 오염수를 방류하게 된다. 후쿠시마 제1원전 주변부지에 1033대의 탱크에 133만톤의 'ALPS 처리수'가 담겨 있다. 절대 안전하다던 원전도 후쿠시마 대지진으로 폭발했는데 ALPS는 괜찮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것은 합리적이다. ALPS는 가동 후 벌써 8번 고장이 난 이력이 있다 .
또 하나는 ALPS가 처리하지 못하는 삼중수소(트리튬)와 탄소14다. 트리튬은 베타선을 배출한다. 감마선을 배출하는 다른 방사성물질보다는 약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트리튬이 체내에 들어갔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는 점이다. 마치 유전자변형식품(GMO)의 안전성이 여전히 논란중인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과학은 GMO가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다고도, 해가 분명히 있다고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체내로 흡수된 트리튬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냥 안전하다고 강변해서는 안된다.
광우병 파동 때도 촛불시민의 문제제기가 2차협상 끌어내
사실 정부는 안전을 우려하는 국민 목소리를 일방적으로 설득하려 들 게 아니라 이를 대일외교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염수 우려를 '괴담'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사례로 드는 광우병파동만 해도 그렇다. 당시(2008년 4~6월) 미국과 소고기 협상에 대한 '춧불시민'들의 문제제기는 결과적으로 2차협상과 추가협상을 끌어냈다. 미국산 수입소고기 연령을 30개월 미만으로 못박았고 광우병 유발 특정위험물질(SRM)을 포함해 우려가 있는 부위가 포함될 경우 수입 쇠고기를 반송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시켰으며 검역절차도 강화했다.
물론 해양수산부는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방사능물질 유입 모니터링 지점을 확대하고 수억원대 방사능 검사장비도 추가 배치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가 과연 안전한지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를 담아 일본측이 더 강력한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게 국내 수산업계 생계와 국민의 수산물 섭취를 보장하는 길이라고 본다. 먹거리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