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통령 뜻 거스르는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들의 최대 숙원인 '자치조직권' 문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인사권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해결을 지시했지만 행정안전부는 현안과 이상민 장관의 부재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올해를 넘겨 내년 총선국면으로 넘어가면 '자치조직권' 등 지방문제 해결은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시·도지사들의 입장에선 올해가 마지노선인 셈이다. 반면 행안부 입장에선 올해만 버티면 된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행안부, 자치조직권과 인사권 통해 지방 통제
자치조직권과 인사권한이 중요한 것은 행안부가 이를 통해 지방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행정조직 운용, 인력의 활용과 관련된 조직권한은 지자체의 고유권한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행안부는 지자체에게 이 권한을 넘겨주지 않았다. 지금도 기준인건비제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을 통해 지자체 조직 운용을 통제한다. 개별 지자체의 기준인건비를 산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반론권도 주지 않는다.
대통령령인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지자체의 실·국·본부수를 규제한 것이다. 지자체가 행정수요에 대응해 조직을 만들려고 해도 행안부의 승인 없이는 한시조직조차 만들 수 없다. 지난해 대구시와 행안부의 갈등도 이 규정 때문에 발생했다.
시·도 부단체장과 기획조정실장 등 지자체의 핵심 보직 인사권도 행안부가 행사한다. 행안부가 관련조항 해석을 왜곡한 것이 문제다. 지방자치법 123조에 '광역지자체 부단체장은 단체장의 제청으로 행안부장관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다. 행안부는 '거쳐' 가는 곳인데 장관의 인사권한이 됐다.
그간 시도지사협의회는 자치조직권 문제를 중앙지방협력회의의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하지만 번번이 행안부 관료들에게 막혀 안건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이철우 시도지사협의회장은 "윤석열정부의 남다른 관심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방 관련 안건들이 중앙지방협력회의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시·도지사들은 지난 21일 임시총회까지 열어 다시한번 자치조직권과 인사 문제를 제기했다. 시·도지사들은 8월 중앙지방협력회의를 벼르고 있다. 이는 이상민 행안부장관이 탄핵심판에서 살아돌아올 경우 원대 복귀하는 시점과도 관련이 있다. 대통령의 복심인 이 장관이 중앙관료들과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고 기대한다.
시·도지사들의 요구는 구체적이다. 이번 임시총회에서 조직·인사에 관한 개선안을 확정했다. 지자체의 행정기구 설치와 부단체장 정수·직급을 조례에 위임해 달라며 지방자치법과 시행령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정부의 기준인건비 산정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기준인건비제는 기준인건비 안에서 지자체가 정원을 자율적으로 운영하자는 취지인데 행안부가 일방적으로 기준인건비를 산정해 각 지자체에 통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지자체의 이의신청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대통령실의 자치조직권 제도개선 의지에 기대
민선 8기 들어 대통령이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하면서 시·도지사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 것은 사실이다. 협력회의 부의장을 국무총리와 시도지사협의회장에 공동으로 맡긴 것이 상징적이다. 시도지사협의회장인 이철우 경북지사는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며 지방 관련 정책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나 김태흠 충남지사 등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다른 시·도지사들도 장관과 마주 앉아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정례화되면서 제2국무위원으로 장관급 예우를 받게 됐다.
시·도지사들의 위상이 높아졌는데도 지방자치를 위한 최소한의 요구들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지자체들은 행안부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하물며 여러 중앙부처의 이해가 걸린 특별행정기관 지방이관 등은 말할 나위도 없다.
다행히 대통령실이 자치조직권 제도개선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우선 이달 말까지 행안부 자체 방안을 마련해 보고토록 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지금이라도 자치조직권을 바로잡아 지방자치의 물줄기를 바꿔야 한다. 이는 중앙에 예속된 지방자치를 바로세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