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9월 위기설과 최저임금

2023-07-06 11:53:27 게재
저소득층을 위해 마련한 정책이 당초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저소득층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전세자금 대출을 확대한 정책이 오히려 전세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결과적으로 서민들에게 피해를 준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저임금 제도도 마찬가지다. 저임금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났지만 노사 간의 첨예한 대립으로 부작용이 속출, 이 제도의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최저임금을 지나치게 올리면 시장 약자를 더 궁지로 내모는 모순적 상황이 전개된다.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2018년 최저임금을 16.4%나 대폭 인상한데 이어 2019년에도 10.9%나 올렸다. 시간당 6470원이던 최저임금이 7530원, 8350원으로 급격히 높아졌다. 그 결과 2017년에 매달 20만~40만명씩 늘던 취업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아르바이트생마저도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 전개됐다.

그 대신 소득과 고용 안정성이 취약한 주당 15시간(하루 3시간) 미만 초단시간 취업자수만 급증했다. 이들에겐 주휴수당 퇴직금 연차휴가를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이를 택한 결과였다. 게다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선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근로자가 30%까지 폭증, 애꿎은 소상공인들을 대거 범법자로 만들었다.

최저임금 정책이 을과 을의 전쟁이 돼서야

이러한 부작용으로 인해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2.9%, 1.5% 인상되는 데 그쳤다. 2020년 인상률이 결정되던 날, 당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누군가의 소득은 또 다른 누군가의 비용이다. 그 소득과 비용이 균형을 이룰 때 국민경제 전체가 선순환하지만, 어느 일방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때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진다"고 뒤늦게 반성했다. 이어 "최저임금 정책이 이른바 을과 을의 전쟁으로 사회갈등 요인이 되고, 정쟁의 빌미가 되었던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올해도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지 못한 채 지난달 29일 법정시한이 만료됐다. 하지만 최임위가 다시 가동하기 시작해 다행이다. 근로자위원 위촉 문제로 보이콧을 선언하고 회의장을 뛰쳐나갔던 노동계가 시한만료일 열린 9차 회의에 복귀, 4일 10차 회의가 재개됐다. 이날 회의에서 노동계는 기존안보다 0.7% 낮춘 1만2130원, 월 209시간 기준 253만5170원을, 경영계는 0.3% 올린 9650원, 월 201만6850원을 수정안으로 각각 제출했다. 그러나 양측간 간극이 여전히 커 재수정안 제출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시중에는 '9월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다. 급격한 금리인상과 고물가로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유예 등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해 온 금융지원이 예정대로 9월에 종료되면 이들 대출금 중 상당수가 부실화하면서 금융시스템이 마비되는 금융권발(發)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당국은 위기설을 일축한다. 금융지원이 종료되더라도 자율협약에 따라 2025년 9월까지 만기연장이 가능하고 빚을 갚기 힘든 자영업자의 경우 지난해 10월에 도입된 새출발기금을 활용해 채무조정에 나서면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체력이 급격히 약화한 중소기업·자영업자 부실 문제에 대한 위기감이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연체율은 1%를 돌파해 8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중·저소득층 연체율은 2%에 육박했다. 문제는 올해 들어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지금과 같은 경기부진이 지속될 경우 연체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지난 3년여에 걸친 코로나 유행 기간중 50% 이상 폭증해 1033조7000억원까지 치솟은 자영업자 대출금 관리가 하반기 금융시장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올해도 공익위원 중재안으로 결정될 가능성

소상공인들은 9월에 정부의 금융지원 만료로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면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 것이라면서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임위는 마지막까지 노사간 합의에 실패할 경우 중립인 공익위원들만으로 중재안을 만들어 이를 표결에 부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심의에서도 노사가 3차 수정안까지 제출했는데도 더 이상 접점을 찾지 못하자 그렇게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 방식은 최임위의 역할과 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행위로, 최저임금 제도의 무용론만 더욱 부각시킬 것이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