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와의 전쟁' 불사하는 장관들 … 성과 내기? 몸값 띄우기?

2023-07-10 11:10:23 게재

원희룡, 양평고속도로 "백지화" 파장 … "민주당 간판 내려라" 도발

박민식 "백선엽의 '과' 침소봉대" … 한동훈, 1년 내내 야당과 충돌

거야 맞서 국정성과 내기 위한 몸부림 … 총선 겨냥한 도발 해석도

과거 여야간에 치열한 정쟁이 벌어져도 행정부처를 지휘하는 장관이 직접 참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여당의원을 거드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실세장관들은 역대장관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거야와의 전쟁'에서 선봉에 서 있다. 여당의원보다 전투력이 돋보인다. 거야에 맞선 소수정권 장관으로서 국정성과를 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해석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몸값 띄우기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엇갈린다.

◆검사·서울대 후배 장관들 = 윤석열정부 실세장관들의 행보가 이례적이다. 거야에 맞선 여권의 공격수를 자임하는 경우가 잇따른다. 원희룡 국토부장관과 박민식 보훈부장관,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대표적이다. 이들 장관들은 윤 대통령의 검사·서울대 후배라는 공통점이 있다. 윤 대통령의 측근 또는 윤석열정부 실세로 통한다.

대화하는 원희룡 장관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가짜뉴스 관련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원 장관의 행보는 파격적이다. 원 장관은 양평고속도로 사업에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 6일 "사업 자체를 전면 중단하고, 이 정부에서 추진된 모든 사항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혀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원 장관은 "아무리 팩트를 설명해도 김 여사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민주당의 가짜뉴스 프레임을 우리가 말릴 방법이 없다"며 "수사 결과 의혹이 근거 없고 무고인 것이 밝혀진다면 (민주당)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내 다수를 차지한 제1야당을 향해 '간판' 운운한 것. 선전포고로 해석될 법 하다.
원 장관은 지난 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민주당은) 과거에 광우병, 천안함, 세월호, 온갖 괴담·선동으로 재미도 봤고 탄핵도 몰고 가고 했다" "도박은 이재명 대표 가족하고 김남국, 이런 측근들이 좋아하는 거 아니냐"며 야당을 겨냥한 발언을 이어갔다.

축사하는 박민식 장관 |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로제타홀 기념관 개관 2주년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 장관의 파격행보도 뒤지지 않는다. 국가 보훈사업을 책임진 박 장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백선엽 전 장군의 역사적 재평가를 주도하고 있다. 야당과 진보세력에 의해 이들에 대한 평가가 왜곡됐다는 판단으로 읽힌다.

박 장관은 10일 SNS에서 '박원순이냐, 백선엽이냐'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글을 통해 야권을 정조준했다. 박 장관은 "박원순의 확인된 '과'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백선엽의 있지도 않은 '과'는 침소봉대하는 특정진영의 편협한 시각으로 국가유공자 문제를 바라보는 일은 더이상 자행되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박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 중인 '민주화 유공자법'을 겨냥해 "이 법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도 언젠가 민주화에 대한 공만 추켜세워지다 민주화 유공자로 부활할지 모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각에서 그동안 대야 공격수 역할은 사실 한 장관이 전담하다시피했다. '한동훈 어록'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야당을 겨냥한 한 장관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국무회의 참석한 한동훈 장관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한 장관은 "이 나라의 진짜 기득권 카르텔은 운동권 카르텔이라고 많은 국민이 생각하실 것" "그 분(우상호 민주당 의원)이야말로 5.18에 NHK 룸살롱에서 여성에게 쌍욕을 한 걸로 알려진 분 아니냐. 본인이 그러니까 남들도 다 그러는 줄 아는 것 같다" "저질 음모론에 올라타고 부추긴 이재명, 박찬대, 박홍근, 김성환, 박범계, 장경태, 우상호 의원들께 사과 요구한다" "오직 성남시장 이재명의 지역토착비리 범죄혐의만 있을 뿐"이라며 야당과 사사건건 충돌해왔다.

◆'윤심' 의식한 참전? = 윤석열정부 실세로 꼽히는 원희룡, 박민식, 한동훈 장관이 야당과의 전쟁을 피하지 않는 것을 놓고, 여권에서는 소수정권 장관의 피할 수 없는 운명 아니겠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거야의 공격에 내각은 속수무책인 모양새다. 소수여당은 제 앞가림도 힘든 형편이다. 결국 소수정권 장관들은 여당에 기대기보다 거대야당을 직접 상대할 수밖에 없다. 세 장관은 '묻지마 반대'를 일삼는 거야에 맞서 국정성과를 내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는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해석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대야관계에서 몸사리는 장관보다 전쟁을 불사하는 장관을 선호할 수 있다.

실세장관들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세 장관은 내년 총선 출마가 점쳐진다. 여당에서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세 장관이 전략지역을 분담해주길 바라는 기류도 감지된다. 총선을 앞둔 세 장관으로선 '거대야당과의 전쟁'을 통해 여권지지층의 전폭적 지원을 확보하려는 계산이 작용할 수 있다. 몸값을 올리기 위해 의도된 도발이라는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윤심'을 의식한 참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일부 장관은 출마보다는 내각과 대통령실 '영전'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총리나 비서실장 등 이동 가능성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것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엄경용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