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평화와 번영을 위한 아세안의 노력
미중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아세안(ASEAN)'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중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단합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 수호에 나서는 모양새다. 인도네시아 레트노 외무장관은 지난주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서 "동남아시아는 지난 50년간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며 "이는 포용적인 지역구조를 구축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말했다.
아세안의 전략은 크게 두가지다. 단결력을 높이고 중심을 잘 잡아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는 것과 가능한 많은 나라를 아세안이 포용하는 것이다.
유럽연합과는 다른 '사람중심 공동체 건설' 내세워
지난주 인도네시아에서는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등이 열렸다. 아세안 10개국(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브루나이) 중 미얀마를 제외한 9개국과 가입 추진 중인 동티모르 등을 포함해 모두 27개국(미국 중국을 비롯해 남북한과 일본 러시아 튀르키예 호주 캐나다 유럽연합 인도 뉴질랜드 영국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외교장관이 참여했다.
모든 회의의 중심에는 아세안의 협력과 발전이 놓여 있었다. 올해 아세안 의장국인 인도네시아의 조코위 대통령은 "아세안은 다른 나라의 대리인이 될 수 없다"며 "우리는 아세안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해 아세안의 단합과 결속, 아세안 중심성 강화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세안은 지난 5월 정상회의에서 2025년부터 20년간의 새로운 비전을 담은 '포스트 2025 비전'을 마련해 공동체 통합을 가속화하기로 결의했다. 유럽연합(EU)과 비교해 통합력은 떨어질 수 있지만 EU가 가진 여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중심 공동체' 노선을 택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등 세 분야에 걸쳐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통합해 가며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이다.
아세안 번영의 원천 중 하나는 미국과의 무역흑자와 미국이 자금을 지원한 다양한 산업 활동에서 나왔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미국의 영향력은 꾸준히 감소했고,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했다. 지난 10년간 중국은 아세안의 주요 무역파트너가 됐다. 아세안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서도 아세안 발전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자유무역을 통해 번영을 추구하는 아세안 국가들은 자유무역을 부인하는 듯한 일련의 움직임을 우려한다.
아세안 외교장관들이 지난주 공동성명에 담은 역내·국제문제는 △남중국해 △한반도 △미얀마 △우크라이나 △중동 5가지다. 남중국해 문제는 '국제법 원칙에 따른 분쟁의 평화적 해결 추구'를 원칙으로 제시했다. 또 중국과 공동성명에서 '2002년 남중국해 당사국 행동선언'의 완전한 이행을 재확인하고 실질적인 행동강령 채택을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지역의 안정을 위협하는 우려스러운 전개'라며 당사자들의 평화적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아세안 비핵지대 원칙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과 함께 평화적 해결노력을 언급했다. 중동문제에 대해선 1967년 이전 국경을 기반으로 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 지지를 명시했다.
아세안 지도력과 통합의 시험대 미얀마사태
미얀마사태에 대한 아세안의 해법은 미얀마 내부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아세안은 외부에서 이를 도울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아세안은 2021년 4월 미얀마 군부와 5개항 즉 △폭력 중단 △모든 이해관계자와의 대화 △중재 및 대화촉진 위한 아세안 특사 임명 △미얀마 국민에게 인도적 지원 허용 △아세안 특사의 미얀마 방문과 관계자 접촉 등에 합의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세안은 미얀마 군사정권에 5개항 이행을 촉구하고 있을 뿐, 경제적 제재나 압박 등의 수단은 반대한다. 미얀마정권도 아세안 특사가 아닌 태국 외무장관의 수지여사 면담을 허용하는 등 대화 여지는 열어두었지만 저항세력 탄압은 계속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며 미얀마사태는 아세안의 지도력과 통합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민간인 희생이 늘어날수록 미얀마 해법을 둘러싼 아세안의 분열과 국제사회에서 아세안의 위상은 손상될 수밖에 없다. 아세안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