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은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날까
잠자기, 시원한 데로 이동하기
'까나리젓'으로 유명한 까나리는 우리나라 동·서·남해, 일본 및 알래스카 등지에 분포하는 냉수성 연안어류다. 바닥이 모래인 연안에서 무리지어 생활한다.
수온이 15℃ 이상이 되면 물속 용존산소가 떨어져 호흡이 어렵게 된다. 이럴 때 까나리는 공복 상태로 바다 밑 모래 속에 파묻혀 호흡량을 줄이고 긴 여름잠을 잔다.
까나리는 바위 밑에는 숨지 않고 개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질식이나 공해의 두려움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 물속에서 잠을 자면 포식자에게 먹힐 우려가 있어 모래에 들어가 잔다고 한다.
이런 생태가 밝혀지지 않았을 때는 까나리가 여름에 갑자기 사라졌다가 가을에 다시 나타나는 이유를 아무도 몰랐다. 여름잠을 자지 않는 북쪽 바다의 까나리는 남해안 까나리의 2배까지 자란다고 한다.
여름잠을 자는 나비도 있다. 멸종위기 2급 '왕은점표범나비'다. 8월에서 9월 중순까지 한창 더울 때 왕은점표범나비는 숲이나 논밭 근처 나무 그늘에서 잠을 잔다.
왕은점표범나비는 우리나라와 극동 러시아, 일본, 중국, 티베트 등지에 분포하는 한대성 나비다. 내륙에서는 개체수가 매우 적지만 서해안 섬이나 해안에서는 자주 관찰되며, 현재 인천시 옹진군 굴업도 개머리초지 일대가 남한 최대 서식지다.
'다람쥐'도 여름잠을 잔다. 다람쥐는 무더운 여름이 되면 4∼5일 동안 여름잠에 든다. 다람쥐는 최대 2m 깊이의 굴을 파고 땅 위보다 시원한 땅속에서 긴 잠을 잔다. 잠자는 동안에는 대사활동이 느려져 따로 먹이를 먹지 않아도 된다.
냉수성 민물어류인 '열목어' '연준모치' '둑중개'(모두 멸종위기2급) 등은 여름철 수온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수온이 20℃ 이하로 유지되는 강 상류 계곡으로 피신한다.
연준모치 지구 최남단 서식지로 알려진 단양 어상천면의 작은 하천은 석회암 지역의 지하수가 용천수로 솟아나는 곳이다. 이 일대 하천수 온도는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18℃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반드시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해야 한다.
무더위를 피해 이동하는 야생동물의 대표주자는 철새들이다. 여름철새들은 사실 우리나라가 고향이다.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새끼를 기른다. 제비나 꾀꼬리, 파랑새, 뻐꾸기 등은 우리나라 여름철 기후에 잘 적응한 종들이다.
장마철에 약한 비가 내리면 올해 태어난 제비들이 어울려 미친듯이 비행연습을 한다. 빠른 날개짓에 올라가는 체온을 빗줄기가 시원하게 식혀주는 걸 즐긴다.
육상동물들은 땀으로 체온을 식히지만 새들은 그럴 수가 없다. 하늘을 날기 위해 모든 체액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새들은 찬공기와 비, 물로 체온을 식힌다. 도요새가 수천미터 높이에서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도 찬공기로 몸을 식히기 위해서다.
여름철새들은 한반도의 한겨울 추위엔 적응하지 못했다. 겨울이 되면 멀리 아프리카까지 가서 지내고 여름이 오면 상대적으로 덜 무더운 우리나라로 온다.
겨울철새들은 모든 것이 얼어붙는 시베리아의 겨울을 피해 우리나라로 온다. 겨울철새들은 봄이 오면 다시 시원한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한반도의 장마철과 찌는듯한 무더위에 적응하지 못했다.
올해 봄 시베리아 출신으로 추정되는 야생황새가 서산 천수만에 장가를 들었다. 새끼도 4마리나 번식을 했다. 황새는 한번 둥지를 틀면 이동하지 않는다.
시베리아 출신의 야생황새가 한반도의 여름을 버틸 수 있을까? 잘 버틸 것이다. 황새와 먹황새는 본디 겨울철새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던 텃새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