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그토록 '실패한 정권'을 만들고 싶나
왕조시대도 아니고, 군사독재시대도 아닌 민주화된 21세기 대한민국에 용비어천가가 요란하다.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 국민의힘에서다.
논란이 된 김건희 여사의 리투아니아 명품 편집매장 방문과 관련,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수행실장을 지낸 이 용 의원은 "섬유패션 문화탐방을 한 것"이라며 "이것도 하나의 외교"라고 강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가게에서 호객을 했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가 몰매를 맞은 직후다.
앞서 윤 대통령의 '수능 킬러문항 배제' 지시가 도마에 올랐을 때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원장은 "대통령은 입시비리를 수도 없이 다뤄본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도 "저도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고 거들었다.
박근혜정권 당시 원로들은 박 대통령을 '박정희2.0'이라고 비판했는데 용비어천가가 울려퍼지는 지금의 용산 풍경만 보면 딱 '전두환2.0'인 것 같다. 하긴 오죽하면 용산 대통령실을 '용궁(龍宮)'이라고 이죽거리는 얘기들이 시중에 나돌까.
"아니 되옵니다" 못하는 '동(同)의 참모들'만 득시글
대통령의 참모나 각료들에게 충성심은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여권 관계자들은 아부를 충성심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충(忠)'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유교정치에서도 부끄럽게 여기는 일들이다. 유교철학에서는 오히려 충(忠)을 글자 형상대로 마음(心)의 중심(中)을 잡는 일, 즉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는 처신으로 이해했다. 주자(朱熹)가 충을 자기 내면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盡己)이며, 망령됨이 없는(無妄) 상태라고 역설한 까닭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사대부 신료들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사약(死藥)을 받더라도 "아니 되옵니다"라고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충에 대한 이런 철학적 고민을 내재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정권의 각료와 참모들은 어떤가. 권력의 오작동에 대해 "아니 되옵니다"라고 하기는커녕 "잘 하고 있사옵니다"라고 입에 발린 얘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간혹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감히 말도 못 꺼내는 분위기라고 한다. 모두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지 못해 안달난 모양새다.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景公) 때의 일화다. 사냥에 나선 경공이 자신처럼 말을 모는 양구거(梁邱據)를 보고 "나처럼 말을 급하게 모는 양구거가 나와 화합을 이루는 신하"라고 칭찬한다. 그러자 당대의 명재상 안영(晏婴)이 정색을 한다. "칭찬할 일이 아닙니다. '화(和)'는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것입니다. 주군이 말을 급하게 다루신다면 저희들은 천천히 몰아 그 부족함을 채워드려야 합니다. 양구거가 주군 흉내를 내 말을 급하게 모니 그것은 '동(同)'일 뿐입니다. 주군이 옳다고 하면 양구거도 옳다고 하고, 주군이 그르다고 하면 양구거도 그르다고 합니다. '동'은 결국 망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그 유명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고사다.
지금 대통령 주변에 과연 안영같은 인물은 있는가? 아니 대통령 눈치보기 급급한 '동(同)의 인물'들만 득시글거리지 않은가. 대통령과 함께 북치고 장구치며 동(同) 길을 가다 망한 사례는 멀리 있지 않다. 대통령의 레이저눈빛이 무섭다며 면전에서 "아니 되옵니다" 한마디 못하다가 4년 만에 촛불의 바다에 침몰한 박근혜정권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식의 낯 뜨거운 말의 성찬 속에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문재인정권도 별로 다르지 않다.
대통령 리더십의 약점 보완할 고민이나 했었는지 의문
'전두환2.0' 같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 리더십은 아마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다. 평생을 상명하복의 검찰조직에서 일하며 몸에 밴 스타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도 검사체질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최고권력의 리더십이 이처럼 상수라면 참모나 각료, 그리고 당에서 이를 보완할 시스템을 만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지난 1년 사이에 대통령 본인과 여사 리스크가 되풀이 되는 것을 보면 시스템은 고사하고 그런 고민이나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물론 한번 눈 밖에 나면 얄짤없이 내치는 권력의 속성상 참모나 각료, 당료가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정권에 이름을 올린 인사라면 해야 될 말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고 왕조시대처럼 사약을 받거나 귀양갈 일도 없지 않은가. '실패한 정권'의 조연으로 남고 싶다면 그냥 지금처럼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