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기념관, 명분·장소 논란

2023-08-14 10:54:15 게재

낙산공원·배재박물관·용산공원 등 분분

대통령실·보훈부 강행, 건립명분 논란도

광복 78주년을 앞둔 시점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14일 내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기념관 건립 지역으로 유력하게 꼽히는 서울시는 장소 문제로 혼선을 겪고 있다. 기념관 건립에 앞장선 보훈부가 당초 제안한 곳은 종로구 낙산근린공원이었다. 하지만 해당 부지는 좁은 진출입로와 유치원 건물 등으로 인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승만 대통령 모교인 옛 배재학당 부근이 기념관 부지로 적합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곳 역시 기념관이 들어설 공간이 협소한데다 인근에 상업시설이 빽빽히 들어서 있어 부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달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열리고 있다. 두 대통령 동상을 한 곳에 세운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왼쪽이 트루먼, 오른쪽이 이승만 대통령 동상. 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원로배우 신영균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이 제공하겠다고 내놓은 강동구 고덕동 사유지는 그린벨트로 묶여 도시계획 변경이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

기념관을 유치하려는 자치구들도 나섰다. 서대문구는 현 독립문 공원 인근을, 종로구는 이승만 대통령이 거주했던 '이화장'을 제안했다.

논의가 공전을 거듭하자 정치권도 가세했다. 용산공원과 최근에 개방된 송현동 터를 기념관 부지로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현재 이승만 기념관 건립 논의를 이끌고 있는 단체는 건립추진위원회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있고 각계 저명 인사를 비롯, 박지만 김현철 김홍업 등 전직 대통령 아들들까지 대거 참여하고 있다.

◆건립취지 사회적 합의 부족 = 이승만 기념관 건립은 윤석열대통령 대선 공약이자 박민식 보훈부 초대 장관이 첫 과제로 내세운 사업이다. 윤석열정부 이후 기념관 건립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장소 논란에서 드러났듯 대규모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음에도 논의가 공전하는 것은 건립 취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확산이 부족한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 그에 기반한 공과 과의 구분 없이 적당한 땅만 찾다보니 방향성 없이 논의가 표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학계 한 관계자는 "기념관 성격, 기념할 내용 등에 대한 평가 없이 부지 규모, 빠른 건립 가능성만을 따지다보니 이곳 저곳 찔러 보는 식으로 졸속 진행되는 양상"이라며 "부지 확보가 가장 우선이라지만 지금처럼 진행되다보니 건립 추진 명분부터 삐걱거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족한 사회적 합의가 기념관 건립의 속도를 늦추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역사학계에선 최근 광복회 회장의 발언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지난 10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기념 대한민국 정체성 대토론회에서 "나와 광복회는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이승만을 신격화해 '건국대통령', '독재하는 왕이나 다름없는 대통령'과 같은 모습으로 몰아가는 것에는 찬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 회장은 "(이같은 행위는) 이 대통령 자신이 부정하는 식민사관을 그분에게 덧칠하는 것이자 독립운동가이고 대일항쟁, 민주공화정에 앞장섰던 이 대통령을 4.19 직전 정권욕을 탐한 대통령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라며 "이런 괴물기념관이 건립된다면 광복회는 반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와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에 대해 보수 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배경에 '건국론'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정부는 MB정부 15년차라고 할 만큼 MB정부 철학과 인사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MB정부 시절 부상했던 이념논쟁 핵심이 1948년 건국론"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종찬 회장은 "1948년 건국론은 일제강점을 정당화하는 논리"라며 "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이며 1948년 건국론은 이런 역사의 지속성을 토막내고 오만하게 이승만 건국론으로 대체한 것이며 우리는 이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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