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입 정시 확대는 자가당착
교육부가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 시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초 목표였던 상반기를 넘겨 8월 발표도 불투명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 '교육과정 밖 킬러문항 배제' 지시에 따른 여파로 상황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공정 수능'은 태풍이 되어 2028 대입제도 개편까지 집어삼킬 태세이다. 교육계에 따르면 '2028 대입제도 개편안'에 정시 비중을 50%까지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 공정한 대입제도를 만들겠다면서 "정시 비율을 확대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국민의힘 대선 공약집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선발하는 정시 모집인원 비율을 확대하고 대입전형도 단순화하겠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인수위가 공개한 윤석열정부 국정과제에는 이런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정시 확대 공약이 '공정 수능'과 함께 부활하고 있다.
정시 확대 공약, '공정 수능'과 함께 부활
문제는 2025년부터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되면 2028학년도 대입제도가 이를 반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는 대학처럼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다양한 교육과정을 선택해 배우는 제도로 2018년부터 전국 학교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기존의 획일적인 주입식 수업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맞춘 개별화 교육이 핵심이다.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학교생활기록부 중심의 수시모집 비중을 높이지 않으면 안된다. 교육부가 고교학점제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중심의 정시를 확대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재인정부는 고교학점제를 강력히 추진하다 갑자기 정시 확대로 돌아서면서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다는 냉소적인 비판을 받았다. 당시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수능 문제풀이 위주의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정시 비율을 30%로 권고했다. 하지만 조 국 법무부장관 딸의 수시입시 비리 의혹이 문제가 되자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를 명분으로 2023학년도 정시 비중을 거꾸로 40%까지 늘려 발표했다. 조 국 사태로 악화된 여론을 무마하려고 정시 축소 기조를 스스로 뒤집고 정시 비중을 1년 만에 10%p나 늘려놓은 것이다.
정시 비중을 확대한 것은 이를 지지하는 여론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대입 정시 확대' 정책에 대해서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이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도 정시 선발 50% 이상 추진을 당론으로 확정하기도 했다.
국민에게 수능이 공정해 보이는 이유는 시험시간, 시험감독, 공통문제, 객관적 채점 등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정시가 기회의 공정처럼 보이지만 결과의 공정과 무관하다는 주장과 통계는 수없이 많다. 수능의 정시 비중을 늘리면 지방보다 서울이, 서울 강북지역보다 강남을 비롯한 사교육 특화지역, 일반고보다 자사고와 특목고가, 고3보다 재수생이, 중산층 이하보다 부자에게 유리하다. 서민과 약자를 위한다는 문재인정부가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개혁이라며 추진한 것은 아이러니다.
윤석열정부는 문재인정부의 전철을 답습해서는 안된다. 현재는 미래를 준비하는 힘과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과 이를 담아내는 대입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해진 정답 맞히기로 변별하는 객관식 선다형 시험으로 4차산업혁명을 대비할 핵심역량을 기를 수 없다. 디지털·인공지능 시대를 이끌 창의적 인재를 육성을 할 수 없다.
고교학점제와 수능 자격고사화 대비해야
교육부는 △고3 교실 수업의 파행적 운영을 개선하고 △과목마다 문제 중 택일해 2~3시간씩 쓰는 주관식 표준화 대입시험을 추진하고 △고교학점제에 대비하면서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는 방향으로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
새로운 대입제도는 교육부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고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 검토를 거쳐야 한다. 그렇다고 정시 비중 50% 확대 방안과 같은 중차대한 사안을 국교위에 떠넘겨서도 안된다.
대입제도는 초중고교 교육의 방향을 좌우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 한마디에 입시제도가 뒤바뀐다면 학생들은 혼란을 겪고 정책의 신뢰성도 담보할 수 없다. 현재 우리 교육이 백년대계는커녕 1년짜리 계획도 안된다는 학부모의 불만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