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실전편 9
"경제성장해도 기후재난대응 못하면 역성장"
2025년부터 ESG(환경·사회·투명) 경영 공시 단계적 의무화 … 위기를 기회로, 질적인 녹색성장을 제대로 구현
인터뷰 - 최흥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환경·사회·투명(ESG) 경영 규제가 세계적으로 강화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입니다. 질적인 녹색성장을 제대로 구현하는 게 목표입니다."
7일 최흥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전세계적으로 ESG 공시 규제를 의무화하는 추세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연합(EU)의 공급망실사지침에도 대응해야 한다. 환경보호 및 인권 등에 관해 공급망 실사가 의무화된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준비 수준은 걸음마 단계다. 기업의 가치사슬 내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어떻게 산정하고 관리해야 할지 등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불확실성이 높은 추정이나 예측 부분에 대한 법률 리스크 부담도 커지는 게 현실이다.
최 원장은 "어렵지만 잘만 헤쳐나가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며 "경제성장을 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드는 탈동조화 경제정책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과의 인터뷰는 서울 은평구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서 이뤄졌다.
■국제적으로 ESG 공시 규제 강화 추세다.
기후위기를 계기로 한 보호 무역주의로 인해 기업들이 어려움이 많다.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른 속도로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 기후변화 특사인 존 케리 대사가 상원의원 시절에 발의한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tax)가 대표적인 예다. 발의 당시에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에 방점을 뒀지만 환경 전반과 경영까지 염두에 두는 걸로 바뀌었다.
ESG 경영은 유럽연합(EU)과 미국이 주도적으로 추진 중이다. ESG 제도화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수주계약 파기까지 걱정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글로벌 기업조차 자체 문제는 능동적으로 해결 가능하지만 협력사까지 챙겨야 하는 점을 어려워한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인 ESG 규제를 오히려 새로운 성장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환경과 경제를 함께 살리기가 쉽지 않다.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규정한 교토의정서가 2005년 2월 처음 발효되는 것을 계기로 OECD(파리)에서 연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환경문제인데 경제학자들이 많이 참석했고 기조 발표자도 경제학자였다는 게 특이했다.
당시 발표내용 중 경제성장률과 재난 손해보험 증가율 그래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경제성장을 잘 해도 재난피해를 빼면 오히려 역성장이 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은 감소'하는 탈동조화 경제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는 곧 그동안 우리가 펼쳐온 성장전략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탈동조화 경제정책을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과 △이들 신기술이 시장에 확산될 수 있게 만드는 정책과 금융 뒷받침 △녹색인재가 필요하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이 세 가지 기능을 다 갖고 있다. 지난 30년간 축적된 노하우와 기술, 인재양성 기능을 활용해 녹색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기업을 양성해내려 한다. 20년 전에 환경부에서 역점적으로 추구했던 녹색기술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에코-2 프로젝트, 2008년부터 추구해온 질적인 녹색성장을 제대로 구현해 보고 싶다.
올해 초 ESG인프라지원단을 신설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및 감축, ESG 경영체계 구축 등 원청 기업의 요구인 ESG 경영을 내재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기업이 녹색으로 전환할 때 필요한 자금조달도 지원한다. 나아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수정·보완해 녹색경제활동 기준에 적합하게 투자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ESG 규제가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상황을 시의적절하게 전파하기 위해 온라인(ESG-On) 세미나도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기후공시 의무화 준비가 촉박하다.
환경영향이 큰 기업이나 △연결기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주권상장법인 △녹색기업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은 녹색경영 체계, 자원·에너지 사용량, 온실가스·환경오염물질 배출량 등의 환경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그동안 운영해 온 환경정보공개제도를 토대로 기업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우리의 공개 항목을 세계적인 ESG 공시항목에 맞게 개편해 환경정보공개를 위해 수집·검증된 정보가 국제사회에서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국내 제도 이행을 통해 세계적인 ESG 공시에 필요한 환경정보를 수집·검증하는 일을 지원한다. 개편한 환경정보공개제도를 2024년부터 적용할 계획이고 2025년부터 본격화될 ISSB의 공시 대응에 마중물 역할을 할 걸로 기대한다.
■스코프 3 산정 부담감이 상당한데.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배터리 규정 등 기후와 통상을 연계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스코프 3(Scope 3)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과정평가(LCA)가 부각되고 산업계의 환경성평가목록 데이터베이스(LCI DB)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하는 중이다. Scope 3 산정 시 사업장 외의 탄소배출량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국가 LCI DB는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LCI DB 확충은 물론 국제플랫폼(GLAD)에 등록해 환경성적표지를 국제통용 인증체계로 전환하기 위해 작업 중이다. 철·비철금속 석유정제품 기초화학물질 등 원부자재와 전기 용수 등 유틸리티, 재활용처리 등에 대한 국가 LCI DB도 마련할 계획이다. 한국의 환경성적표지 제도와 EPD 노르웨이와의 상호인정협정(MRA) 체결을 위해 9월 업무협약을 맺을 예정이다. MRA가 체결되면 해외 상위 벤더의 탄소배출량 정보 요구 등 국제 통상 규제에 기업들이 보다 낮은 비용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기업들에게 도움이 된 사례가 있나.
LCA에 잘 대응하면 수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2022년 말 국내 이차전지 제조사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의 탄소배출량 인·검증 정보 요구에 국내 환경성적표지 인증서를 제출해 수주에 성공했다.
이러한 사례들을 계속 만들어 나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수출 주력 산업이면서 세계적인 ESG 공시와 EU 배터리법을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배터리 3사와 함께 금년 말에 배터리 산업의 Scope 3 배출량 산정 가이드라인을 준비 중이다. 또한 삼성전자·현대기아차와는 원청업체와 핵심 협력업체를 패키지로 컨설팅하고 있다.
■EU 공급망실사지침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공급망실사법이 도입되면 실사 의무가 있는 수출기업은 행정업무와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보공개와 책임 범위가 넓어지면서 법적 소송 또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철강업과 같이 광물 등 해외 원재료 의존도가 높거나 가공 세척 등 제품 공정이 복잡하고 여러 협력업체가 있는 경우는 대응이 더 힘들 수 있다.
중소·중견 수출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고 실사 대응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확대하려 한다. 중소기업중앙회 동반성장위원회와 함께 공정개선 진단,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및 감축에 특화된 ESG 컨설팅을 할 계획이다.
[용어 설명]
■탄소국경조정제 = EU는 10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전환기간 개시)한다. CBAM의 기본적인 구조는 큰 틀에서 다음과 같다. EU의 수입업자는 CBAM 기구에 사업자 등록 뒤 해당 품목의 탄소배출량을 매년 신고한다. 이 배출량에 근거해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LCA = 제품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뿐 아니라 유통·사용·폐기·재활용 등 제품의 전 생애주기를 통틀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기법이다.
■LCI DB = 제품에 대한 환경성적을 산정하는 데 필요한 기초 데이터다. 기업들이 LCA시 기초 자료로 활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