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누가 미국 국채를 사줄까
우리나라 10년물 국채금리가 장중 4%를 돌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해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보증 채무 불이행 사태로 금융시장이 혼란을 겪으면서 10년물 금리가 4.6%까지 오른 후 9개월 만이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도 9년 7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8월 초 이후 주요 21개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 평균 상승폭은 15bp(0.01%=1bp) 수준이고, 우리나라는 13.5bp 올랐다. 이 같은 장기 국채금리 상승의 진원지는 결국 미국 국채시장이다. 23일(현지시간 )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4.35%를 기록했다. 2007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16년 만에 다시 최고로 치솟은 미 10년물 국채금리
미 재무부 차입 자문위원회(TBAC)는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메우고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장기물 국채를 증액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지난 1분기 기준 미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31조4584억달러로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18%에 이른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지출을 크게 늘린 결과다. 뒤이어 국제신용평가사 피치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시장을 또다시 강타했다. 피치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미국의 재정적자를 등급강등의 주요 근거로 지적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이 쉽게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 아래 '오랫동안 높은 금리를 유지하겠다(higher for longer)'고 밝힌 점도 장기국채 금리를 밀어올리고 있다. 다만 24일 160억달러의 미 재무부 20년물 국채입찰에서 금리 4.999%, 응찰률 2.56배로 1년 평균 2.64배보다는 낮았으나 예상보다 선방했다는 분위기로 시장금리는 내렸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조정일 뿐 추세적 현상은 아닐 것이다.
올해 3월 말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외국인이 대략 23.9%, 연준이 18.2%, 나머지 57.9%를 민간투자자가 보유하고 있다. 이중 연준은 매월 950억달러(국채 600억달러, MBS 350억달러) 규모로 대차대조표에서 국채를 감축하는 양적긴축(QT)을 실시하고 있다. 2022년 3월 6조2550억달러였던 연준 보유액은 올해 3월 5조7132억달러로 5418억달러가 줄었다. 그동안 미국채를 꾸준히 매입했던 중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매도로 돌아서고 있다. 러시아 역시 전비 마련을 위해 미 국채를 팔고 있다.
중국은 2013년 1조2700억달러로 전세계 최대 보유국이었으나 2014년부터 매도를 계속해 올해 들어 8594억달러로 줄였다. 현재 보유량 1순위인 일본도 2021년 말 1조3008억달러(보유비중 16.8%)에서 올해 5월 1조968억달러(보유비중 14.6%)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미국채를 사줄 수 있을까. 영국 프랑스 캐나다 스위스 등 선진국과 대만 등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국들이 최근 국채 보유를 늘리고 있지만 중국 등의 감소 여력을 채워줄 정도는 아니다. 미국의 은행 등 민간금융사들은 최고의 안전자산이라는 미국채를 편입했다가 파산한 실리콘밸리뱅크 사태의 교훈을 잘 알고 있다.
미 재무부와 연준에겐 어떤 카드가 준비돼 있을까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자산시장에서 무위험수익률(Risk Free Rate) 산정의 근거가 되는데 이 금리가 높아지면 시장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지방은행들의 자금조달과 여신환경이 이 정도 높은 수익률을 감당할 수 있는지, 차입 비중이 높은 테크기업들이나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이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미 재무부와 연준은 이 사태를 계속 방치할 수 있을까.
적어도 세가지 카드 중 일부가 나올 수 있다고 예측해볼 수 있다. 우선 미 재무부는 5월 3일(현지시간) 23조달러 규모의 미 국채 유동성을 늘리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내년에 국채 바이백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바이백 프로그램은 재무부발 양적완화(QE)라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거래가 어려운 채권(주로 장기·초장기채)을 시장 조정자 역할을 하는 주요 딜러로부터 매입해 시장의 매수 여력을 넓혀줄 수 있다.
또 하나는 연준이 나서는 것인데 현재 950억달러인 대차대조표 축소규모를 550억달러 정도로 줄이는 'QT조정'을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매달 400억달러 정도의 달러 유동성이 증가하게 되고 그만큼 국채 매수 여력이 확보된다. 마지막으로 연준의 역레포 계정에는 약 2조달러의 자금이 초과유동성으로 잠겨 있는데 이를 다시 미 국채시장으로 되돌리면 국채 유동성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다만 현재의 역레포 금리를 낮춰야 하는 정책결정이 연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