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세계잼버리대회와 지방시대

2023-08-29 11:39:24 게재

2023 세계잼버리 대회 파행사태의 후폭풍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회는 책임소재를 둘러싸고 정쟁으로 치닫고, 커뮤니티 게시판은 '호남혐오론' 등 근거 없는 얘기들로 넘쳐난다. '지방자치 무용론'과 '지방분권 위기론'도 퍼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잼버리대회 같은 국제행사 유치에 목을 매는 것은 지역발전 동력을 얻기 위해서다. 일단 유치에 성공하면 지역발전에 필요한 핵심 인프라를 짧은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과 재정을 분산하는 균형발전의 효과도 있다.

1993년 대전에서 열린 세계박람회(EXPO)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대회 준비기간 동안 도로 개설 및 확·포장 사업과 상하수도 시설, 하천 정비 등 도시 기반시설이 크게 확충됐다. 노후된 시가지 개선을 포함한 생활환경 정비 사업도 대폭 이뤄졌다. 당시 대전시 연평균 지역개발비가 1500억원인데 비해 그 열배가 넘는 돈이 대전엑스포를 전후해 3년간 집중 투입됐다고 한다. 이는 엑스포 이후 대전이 과학도시 위상을 확실하게 굳히는 결과로 나타난다.

국제행사 통해 지방발전 동력 얻어

국제행사 개최를 지역발전 동력으로 삼은 사례는 대전엑스포 이외에도 여러 곳이 있다. 전남 순천시는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생태도시로 발돋움했고, 대구육상대회 등도 성공적인 대회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해 가덕도신공항을 수십조원을 들여 짓고, 북항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나 전북도가 새만금 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세계잼버리대회를 유치한 것도 다른 지자체의 사례와 다르지 않다.

물론 일부 지자체가 무분별하게 국제대회를 추진해 혈세를 축내는 일도 있었다. 이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지금은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허락없이 국제행사 유치활동에 나설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국가예산이 들어가는 지자체 국제행사는 기획재정부의 '국제행사심사위원회'와 행정안전부의 '중앙투융자 심의의원회' 등을 통과해야 한다. 국제행사를 유치하면 중앙정부가 범정부 조직위원회를 만들어 예산과 조직을 틀어쥐고 행사진행을 주도하는 것 또한 지자체의 방만한 운영을 경계해서였다.

기존에 지역에서 열렸던 국제행사는 모두 이런 식으로 운영됐다. 세계잼버리대회도 마찬가지다. 예산지출을 보면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중심이 된 조직위는 전체 예산 1170억원 가운데 74.3%인 870억원을 쓴데 반해 전북도는 265억원(22.6%), 부안군은 36억원(3.1%)을 지출했다. 대회 초기 문제가 됐던 샤워장 화장실 급수대 급식 식당예산은 모두 조직위가 집행한 예산이다.

물론 전북도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대회장소를 갯벌매립지로 정한 것이나 기반시설 조성이 늦어진 것 등은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지방공무원의 외유성 잼버리 출장이나, 지역업체의 입찰비리 등도 앞으로 수사를 통해 한점 의혹없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하지만 지역에서 치러지는 국제행사가 중앙정부 주도로 이뤄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런 만큼 도로 공항 등 인프라 구축이 지지부진한 새만금 개발사업에 정부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잼버리대회를 유치한 전북도만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지역의 무분별한 국제행사 유치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지역발전을 위해 국제행사를 유치하려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력이 모두 부정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중앙정부 역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대형 국제행사를 통해 국격을 높이고 국가발전의 계기로 삼아오지 않았나.

지방에 제대로 된 권한 주고 책임 물어야

사정이 이런데 중앙정부의 잘못을 덮자고 지자체 책임론을 부각시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까지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자치조직권한과 특별행정기관을 지방으로 이관하면 손해를 볼 중앙부처들이 소문을 퍼뜨리는 진원지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그간 중앙부처들은 지방이 '분권'을 얘기할 때마다 '지방에 권한과 예산을 주면 방만한 운영으로 나라살림을 망친다'는 논리로 대응해왔다.

잼버리 파행사태의 정확한 책임소재는 앞으로 진행될 감사 등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번 파행사태를 지방자치 무용론 또는 지방분권 위기론으로 몰아가는 건 지방균형발전에 배치되는 일이고 지방자치의 대의에도 어긋난다. 지방에 제대로 된 권한을 주지 않고 책임만 묻는 중앙집권적 태도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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