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중국 첨단 반도체, 궁하면 통할까
8월 9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중국 경제전쟁에 쓸 미국의 최신무기를 공개했다. 해외투자심사제를 도입하고 중국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프로젝트 및 첨단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일부 금지하는 행정명령이다. 최첨단산업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 창업자 모리스 창은 미중 반도체전쟁에서 미국의 압승을 자신했다. 그는 8월 4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 주도의 한국·일본·대만 반도체동맹을 언급하며 "우리가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모든 급소(choke point)를 잘 통제하고 있어 중국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진단했다. 일견 타당성 있는 발언처럼 들릴 수 있다.
중국 기술로 개발한 28나노 노광 장비 금년 말 출시
미국정부의 제재에 저항하는 흐름이 만만치 않다. 우선 미국 내 글로벌 기업들의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인공지능(AI) 시대, 가장 가치 있는 회사'로 꼽히는 엔비디아 창립자 젠슨 황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를 팔지 않으면 미국 빅테크기업은 대체불가능한 거대 시장을 잃고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반대로 중국은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만들어 기술자립을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발언은 미국 반도체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젠슨 황은 말로만 하는 비판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미국은 중국이 고성능 반도체를 군사적 목적에 사용하는 것을 우려해 중국·홍콩에 A100 H100 두 모델의 수출을 금지했다, 엔비디아는 이를 대체할 저성능 A800 H800을 개발해 중국에 수출했다.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젠슨 황의 행보는 미중 갈등에 대한 '미국 재계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글로벌 기업을 상징하는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JP모건체이스 회장 제이미 다이먼 등도 자국 정부에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다.
궁하면 통하기(窮則通) 마련이다. 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 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SMEE)가 100% 중국 기술로 개발한 2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SSA/800-10'을 연말까지 출시해 파운드리 기업에 제공할 계획이다. 노광장비는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에 미세한 회로를 새겨넣는 데 쓰는 핵심장비다. 28㎚는 2011년부터 상용화된 반도체 제조기술로 구형에 해당하지만 자동차, 무기, 5G, 사물인터넷용 반도체 제작에 널리 사용된다.
중국 반도체 파운드리 1위 업체인 SMIC는 베이징 선전 상하이 톈진 4곳에 28㎚ 제품을 생산하는 신규 생산라인 구축에 돌입했다. SMIC가 라인을 가동하면 중국 자동차 기업과 IT기기 업체들은 외국산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시장조사업체 IBS는 2025년 전세계 구형 반도체시장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40%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유럽은 과거 중국 기업이 정부 지원금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태양광산업에서 자신들을 몰아낸 것처럼 구형 반도체시장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구형 반도체가 주로 사용되는 자동차 분야는 유럽의 핵심 산업이기 때문에 유럽의 움직임은 예민할 수밖에 없다.
중국 첨단 반도체 성패 섣부른 예단 안돼
미국의 제재로 스마트폰 사업을 거의 접을 수밖에 없었던 통신장비 세계 1위 기업 화웨이가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다. 중국 반도체 생태계를 주도하는 화웨이는 지난해 말 첨단 반도체 공정에 꼭 필요한 극자외선(EUV) 기술 특허를 신청했다. 중국이 EUV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은 7㎚ 이하 초미세 공정을 위해 EUV 노광 장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제재가 장기화하면서 네덜란드 ASML이 글로벌 시장에 독점 공급하는 EUV 장비를 단 한대도 확보하지 못하자 자체 개발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화웨이가 실제 생산까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EUV 장비 생산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섣불리 예단해선 안된다. 40년 전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도쿄선언'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후발주자 삼성이 반도체 첨단기술 초고밀도집적회로(VLSI)에 대규모 투자를 선언하자 당시 세계는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산업에 투자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이 판단은 한국 경제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