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사법부 중심잡기가 절실하다

2023-09-19 11:35:06 게재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전직 대법관 3명에 대한 1심 재판 심리가 지난 15일 종결됐다. 검찰이 기소한 지 4년 7개월 만이다. 재판부는 오는 12월 22일 1심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사법농단'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극명하게 갈린다. 검찰은 재판부에 "피고인들의 행위들로 인해 법관 독립이라는 헌법가치가 철저히 무시되고 재판 당사자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중형을 요청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최후진술에서 "실체도 불분명한 사법농단과 재판거래를 기정사실화했다"며 "3번이나 자체 조사를 했지만 형사조치를 할 만한 범죄혐의는 없다고 결론났다"고 주장했다.

사법부 편가르기 이제 그만

'사법농단'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일제 강제징용 소송, 옛 통진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인사를 통해 판사들의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했다는 것이다. 100명 가까운 판사들이 검찰조사를 받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컸다. 반면 법원의 선고결과는 초라한 편이다. 전·현직판사 14명이 기소됐지만 6명이 무죄확정됐다. 대법원에 계류 중인 4명도 2명만 하급심에서 일부 유죄를 선고받았고 2명은 무죄였다.

그래서인지 양 전 대법원장도 "음흉한 정치세력이 바로 이 사건의 배경으로, 검찰이 수사라는 명목으로 그 첨병 역할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정부가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해 모함을 했고 그 행동대 역할을 검찰이 했다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수사가 아니라 특정 인물을 표적으로 무엇이든 옭아넣을 거리를 찾아내기 위한 먼지털기식 행태의 전형으로 불법적인 수사권 남용"이라고도 했다. 기소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 수사팀장은 한동훈 법무부장관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주장이 옳다면 문 전 대통령 뿐아니라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을 '직권남용' 등으로 조사해야한다.

다수가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국민들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부적절하지만 죄는 아니다"는 식의 교묘한 법리가 적용돼 사법부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도 많다.

양승태 후임인 김명수 대법원장도 24일 6년 임기를 끝내고 퇴임한다. 그는 13일 법의날 기념식에서 "사법개혁을 통해 진정한 사법독립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날 선 비판이 많은 게 현실이다. 재판지연이나 특정 성향의 판사 중용 등에 대한 비난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후배 판사가 대화를 녹음해 공개하는 바람에 '거짓말쟁이'로 치부됐고 검찰조사까지 예정돼 있다.

이러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사법부 전체를 매도해선 곤란하다. 3000명이 넘는 판사들이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의 '성향'에 좌지우지돼 재판의 독립성이 훼손당했을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 많은 판사들이 법원장이나 고등부장판사 승진제도가 없어졌다고 '놀다보니' 재판이 지연됐을까. 거꾸로 재판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게 꼭 좋은 것일까.

아무리 좋은 일도 '극단'은 위험

19일 국회 청문회에 나선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며 사법부 정상화를 내걸었다. 그는 한 기고문에서 "자유수호에 있어서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며, 정의 추구에 있어서 중용은 미덕이 아니다"고도 했다.

이 후보자 글의 취지는 이해가지만 아무리 좋은 일도 '극단'은 위험하다. 자유든 정의든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에서 수많은 극단은 그 사회와 인류에 엄청난 후과를 미쳤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단적으로 바로잡으면 역시 반대로 기울어질 게 뻔하지 않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적폐'니 '카르텔'이니 하면서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부정의는 바로잡아야겠지만 '정파적 이해관계'가 기준이 돼서는 곤란하다. 정치가 정파화되다보니 국민들도 편이 갈려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사법부는 국민의 인신과 기본권 제약을 마지막으로 판단하는 만큼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다. 그만큼 사법부의 중심잡기가 중요하다. 대법관이든 평판사든 판사선서문에 충실하면 될 듯하다. "본인은 법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차염진 기획특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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