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이태원참사 교훈 벌써 잊었나
지난해 발생한 이태원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진 교훈 중 하나는 재난안전에 있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다시 일깨운 일이다. 서울 이태원의 작은 골목에서 159명이 죽어갈 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는 없었다. 재난안전사고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아래로 책임을 전가했고 행정안전부 지자체 소방 경찰 등 국가기관은 서로 책임을 미뤘다.
재난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무는 '재난안전기본법'에 잘 나와있다. 재난안전기본법은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주체로 중앙정부와 함께 지자체를 지목한다.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특히 단체장의 역할에 대한 규정은 구체적이다. 재난안전기본법에 따르면 단체장은 재난이 발생할 경우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으로 현장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단체장은 또 사고발생 후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서 유관기관에 상황을 전파함과 동시에 상황회의를 주재해 현장상황을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태원참사 1년 다 되도록 달라진 게 없어
하지만 이태원참사 당시 정부기관과 해당 지자체 등의 모습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경찰과 소방 등 국가기관은 피해자들의 구조요청을 외면하는 등 최소한의 대처도 하지 않았다. 재난업무 책임자인 이상민 행안부장관의 탄핵이 기각되고, 서울시장 경찰청장 등이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해당 지자체의 대응 또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핼러윈축제 전날에도 인파가 몰려 재난상황이 충분히 예견됐는데 이런저런 사정을 핑계로 예방대책이나 행사당일 상황통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사고발생 이후에도 해당 구청장은 비상대책회의 및 긴급상황조치 등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지 못했다. 컨트롤타워 역할은커녕 현장을 헤매던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태원참사 이후 벌어진 각종 재난상황에서도 여전히 국가재난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7월 15일 발생한 오송지하차도참사는 이태원참사의 판박이였다. 오송참사는 충북도 청주시 행정중심복합도시청 등이 사고예방 의무와 시설관리 책무를 이행하지 않아 14명이 희생된 '관재'다.
지역 재난대응 책임자인 단체장들의 말과 행동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집중호우로 비상 3단계가 내려지면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단체장은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충북지사는 전날 자리를 비우고 서울에서 지인과 간담회를 겸한 만찬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 늦게 나타나선 "내가 현장에 일찍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고 말해 유족들을 울렸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대구시장의 '수해골프' 도 마찬가지다. 지난 7월 15일은 전국적으로 수해가 우려돼 대구시 공무원 1000명이 비상대기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수해골프를 치고도 "뭐가 문제냐"고 대수롭지 않게 되물었다. 이런 단체장의 안이한 인식은 안전사고로 이어졌다.
이태원참사의 교훈을 잘 새겼더라면 오송지하차도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사고였다. 정부가 뒤늦게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내놨지만 국민들은 체감하지 못한다. 이태원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변한 게 거의 없다는 게 정확한 지적일 것이다. 단체장의 현장대응능력 또한 달라지지 않았다. 그간 수차례 제기된 '단체장 재난교육 의무화'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단체장들도 재난업무를 업무의 우선순위에 놓지 않는다.
단체장들 재난에 대한 인식 싹 바꿔야
단체장은 주민 생명과 재산 보호를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자리다. 이제는 태풍이나 폭우·폭설 대비뿐 아니라 한계가 없다고 할 정도로 안전에 관한 책임 범주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단체장들은 재난에 관한 인식을 싹 바꿔야 한다.
10.29 이태원참사 1주기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태원참사가 우리사회에 남긴 상흔은 여전히 크고 깊다. 앞으로도 재난은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과거에도 발생했고,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미래에도 발생할 것이다. 여기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이태원참사를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