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공공부문부터 불법하도급 없애라

2023-09-25 11:56:15 게재
국토교통부는 지난 20일 건설현장 불법하도급 집중단속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3개월 동안 점검한 508개 건설현장 가운데 179개(35.2%) 현장에서 333건의 불법하도급이 적발됐다. 3곳 가운데 1곳에서 불법하도급이 자행된 것이다.

공공부문 발주공사에서도 207개 공사 가운데 28%에 이르는 77건이 적발됐다. 공공부문 발주자에는 국가기관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지방공기업 등 여러 기관이 있다. 이들이 발주한 건설공사 현장의 불법하도급 적발률은 민간발주 건설현장의 적발률 43%보다는 낮다. 그렇지만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부문 공사에서 이렇게 많은 불법 하도급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 특히 지방공기업 발주공사의 적발률이 60%로 가장 높았고, 교육기관도 36%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건설 불법하도급 원청업체 처벌, 공염불 안되게

국토부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 여러가지 대책을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예컨대 불법하도급 과징금을 30%에서 40%로 올리거나, 불법하도급에 대한 처벌수준도 현행 3년 이하 징역에서 5년 이하 징역으로 강화한다는 것이다. 불법하도급을 지시·공모하고 이로 말미암아 부실시공과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피해액의 5배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새로 도입한다.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을 통해 불법하도급을 지시·공모한 원청업체와 발주자에 대한 처벌규정도 신설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눈길을 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재해를 일으킨 원청업체도 처벌규정이 마련된 것처럼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정부가 이제야 방향을 바로잡은 것 같다.

그렇지만 중대재해처벌법에 원청업체 처벌 규정이 마련돼 있음에도 지금까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대형건설사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이 법에 의해 사법처리됐다는 소식은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럴수록 법 자체가 잘못이라는 재계의 아우성만 커진다. 법의 권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정부도 비슷한 기조였다. 만약 집권여당이 국회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어쩌면 벌써 법이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불법하도급에 대해 원청업체도 처벌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라고 여겨진다. 그 용기에 대해 가상하다고 평가해주고 싶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새로 도입한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기업들은 지금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건설현장의 불법하청을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시행하려 할 경우 건설업계와 재계가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지금이야 부실시공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너무 크기에 재계나 건설사들이 아무 말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렇게 점잖은 태도를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국회에서 법안심사 과정에서 강도 높은 로비를 벌여 법안 통과를 막거나 알맹이를 빼버리게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나마 마감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제21대 국회에서 다뤄질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그렇기에 지금 정부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불법하청을 막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고 통과되도록 원희룡 장관을 위시한 국토부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뛰어야 한다. 아마도 여당을 설득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듯하다.

아울러 법이 통과되기 이전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한다. 특히 국가기관이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 발주공사에서 불법하청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선 힘써야 한다. 이 기회에 완전히 일소하겠다는 각오로 풍토쇄신 작업을 벌일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이 앞장서야만 민간 건설기업들도 제재강화를 자연스럽게 따를 것이다. 또 국회의 법개정 논의도 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 현장 불법하도급 폐해 없애는 전기 될 것

불법하도급 문제는 건설현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조업 생산현장에서도 무분별한 하도급으로 인한 산업재해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협력업체들은 기술탈취와 원청업체의 갑질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무리한 하도급으로 인한 해악이 너무 고질적이어서 강물을 끌어들여 오물을 청소한 헤라클레스의 지혜라도 빌려야 할 판이다.

이럴 때 국토교통부라도 건설현장의 불법하도급만이라도 우선 일소함으로써 모범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건설현장을 넘어 제조업 현장까지 불법하도급으로 인한 폐해를 없애는 데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차기태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