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국 '반중국 동맹' 강화의 역설

2023-09-26 11:44:20 게재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관세부과, 투자 검토, 수출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지표를 보면 이러한 정책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중 간 직접 무역관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컨설팅기업 '키어니(Kearney)'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이 아시아 국가로부터 수입한 제조품 66%가 중국산이었지만 지난해는 51%에 그쳤다.

투자흐름도 재조정되고 있다. 2016년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한 금액은 480억달러에 달했지만 지난해 31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올해 주중 미국상공회의소 회원사들이 꼽은 3대 투자대상국에서 중국이 탈락했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은 아시아 대상 신규 외국인투자 프로젝트의 대부분을 가져갔지만 지난해 인도나 베트남에 밀렸다.

미중 직접교역 줄었지만, 대미수출국 중국 의존도 더 커져

미중 직접교역은 줄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다르다. 미국이 중국에서 다른 국가로 눈길을 돌렸지만 이들 국가의 생산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동남아시아다. 이 지역의 대미수출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 나라가 필요로 하는 중국으로부터의 중간재 수입은 폭발적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8~2022년 미국의 제조품 총수입에서 베트남이 차지하는 비중은 6%에서 12%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인도는 6%에서 8.5%, 대만은 5%에서 8.5%로 증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이 탈중국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시장에 가장 많이 진출한 국가는 중국과 밀접한 산업적 연관성을 가진 나라들이다. 공급망은 복잡해지고 무역비용은 늘어났지만 중국의 지배력은 줄지 않았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주목하는 97개 제품 범주에서 69개가 중국의 대아세안 수출에서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배터리와 전자제품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동안 아세안에 대한 중국의 전자제품 수출은 5년 전보다 80% 증가한 490억달러였다. 특히 2020년 11월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작동되면서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와 중국의 경제적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외국인직접투자(FDI)도 비슷한 양상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에 대한 중국의 투자는 미국을 추월했다. 중국·홍콩의 FDI 규모는 2018년까지 미국에 뒤졌지만 2019년이 지나면서 독보적으로 앞서갔다. 2021년 말 기준 미국의 FDI 규모는 약 500억달러로 2018년보다 줄어들었지만 중국·홍콩의 FDI는 800억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인접국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특히 자동차산업에서 두드러진다. 멕시코 '전국자동차부품제조업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니어쇼어링(인접국가로 생산시설을 옮기는 것) 투자의 40%가 중국에서 멕시코로 이전한 기업에게 갔다. 지난해 중국기업들은 멕시코에 월 평균 3억달러를 수출했는데, 이는 5년 전보다 2배 늘어난 수치다.

최근 자동차산업이 호황인 중부유럽과 동유럽에서도 중국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2018년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루마니아가 수입한 자동차부품 중 중국산은 3%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의 급속한 보급에 따라 중국산 수입이 급증하면서 현재 중국은 중부유럽 및 동유럽이 수입하는 자동차부품의 10%를 공급하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EU) 다음으로 많은 규모다.

이념논쟁은 낡은 사고, 첨단기술과 경제로 국민 요구 부응해야

미국의 '반중국 동맹' 강화는 오히려 중국과 미국 동맹국 간의 금융·상업적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설을 낳고 있다. 국제 무역관계는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형태로 진행되고 있어 미래 결과에 대한 성급한 예단은 금물이다. 미국은 중국을 제재하면서도 소통 채널을 적극 가동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 미국 중앙정보국장 국무장관 재무장관 상무장관에 이어 올해 100세를 넘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까지 중국을 찾았다. '아쉬운 놈이 먼저 손 내민다'고 미국의 입장이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중국 화웨이가 7나노미터(nm=10억분의 1m)급 반도체를 탑재한 신형 스마트폰을 출시하자 미국은 경악했다. 중국이 미국 제재를 극복한다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윤석열정부는 한미동맹에 몰입하는 것이 너무 순진한 행보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철지난 이념논쟁은 낡은 사고의 전형이다. 이념은 경제와 과학기술 앞에 무너졌고 소련 붕괴와 중국 개방개혁이 이를 증명했다. 첨단기술과 경제로 국민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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