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신기술 고급인력 구인난 심각하다

2023-09-27 11:25:40 게재
한국은 지식재산 강국이다. 하지만 수출 주력산업 이외의 원천기술은 빈약하다. 한국경제가 국제무대에서 비교우위를 선점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향후 먹거리로 주목받는 디지털 전환, 인공지능(AI) 융합, 의료·생명공학, 자동차·배터리 등 탄소중립 분야 핵심특허를 많이 확보해야 한다.

생성형AI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한다. 1~2년 내에 모든 산업군에서 생성형AI가 활용되면서 사실상 모든 업무 시스템이 바뀌고 대다수 직장에서 이를 잘 활용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신기술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핵심기술로 급성장하고 있지만 신기술 분야를 이끌 미래인재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그냥 노는 젊은이가 56만명에 달할 정도로 청년실업률이 높다. 하지만 AI·빅데이터·클라우드·나노 등 4대 유망 신기술 분야에서는 2027년까지 6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는 등 고용시장의 양극화가 심하다.

의대 쏠림현상으로 반도체 등 공대 기피현상 심각

글로벌 반도체시장은 2, 3나노급 첨단 미세공정과 이를 위한 설계 등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로 인해 첨단 반도체를 개발하고 설계할 수 있는 고급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고급인력 양성 규모는 왜소하기 그지없다.

국내 대기업들은 실력있는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채용행사를 열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AI 사업이 불확실해 보인다는 이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게다가 자체적인 인재양성 속도도 기술·수요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껏 키운 국내 AI 인재들마저 미국 등 해외로 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도체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대학 내 계약학과 설립에 나섰다. 하지만 인력 충원 효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계약학과에 들어가면 등록금을 전액 지원받는 것은 물론이고 졸업과 동시에 삼성전자 등 유수 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 하지만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와 반도체학과에 동시 합격하면 의대를 선택하는 등 학생들의 공대 기피현상이 무척 심각한 상태다.

미국 일본 대만 중국 등 주요국들도 반도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비교적 단순했던 반도체 공정이 급격한 기술개발과 AI 시장 확대 등으로 복잡해지면서 연구·개발(R&D)의 중요도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보다는 인력 확보가 쉬운 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스템반도체를 중심으로 수백조원을 투입, 평택과 용인 등지에 공장을 짓고 있다. 이로 인해 2031년이 되면 국내 반도체 인력수요가 30만4000명에 달해 5만4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의 한해 배출 인력은 약 650명 정도고 석박사급 고급 인력은 고작 150명 안팎이다. 더구나 계약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교수 자원도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 우리나라와 경제구조가 무척 유사한 독일 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사항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한국은 해외 에너지 의존도가 무척 높고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며 수출시장에서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등 비슷한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다. R&D 투자나 설비가 탄탄하지만 이를 다룰 고급인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유사하다. 그런 독일이 G7 국가 중 유일하게 올해 역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유는 독일이 지난 10년간 경제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아 디지털화 등의 국제 순위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독일과 같은 쇄락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독일의 사례를 참고,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고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

고급인력 수요 충족 위한 이민 수용 시스템 개선을

박사급 인재가 R&D 현장이나 산업현장에 투입되려면 10년 이상 걸린다. 인구절벽을 뛰어넘어 쪼그라드는 경제를 성장궤도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외국인 인력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고급인력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비교우위를 선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값싼 저숙련 이민자를 주로 유치해 오던 캐나다도 최근 고숙련 인력 유치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젠 우리도 고급인력 수요를 충족시키는 이민 수용 시스템이 시급히 마련돼야 하겠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