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중국의 진격, K-반도체의 우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자립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칩을 살 수 없다면 자체 개발에 나설 것이고 이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만 도와줄 뿐"이라며 "중국의 반도체 자립 능력을 경시하면 안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최근 홍콩과 대만 등의 언론은 중국이 반도체 노광장비 수출 통제를 피할 방법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칭화대 연구진이 입자가속기를 활용해 새로운 광원을 만들어내는 SSMB(Steady-State MicroBunching) 프로젝트를 진행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중국 슝안신구에 거대한 반도체 노광장비 공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노광장비 생산업체는 상하이 마이크로전자(SMEE)가 유일한데 자체적으로 심자외선(DUV) 노광장비(ArF 90nm)를 개발했으나 네덜란드 ASML사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품 대비 15년 정도의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국산화율은 약 3%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EUV 노광장비는 7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장비로 세계에서 ASML만이 독점 생산한다.
중국, 미국의 기술 제재 대응해 자체기술로 EUV 개발 착수
전문가들은 중국이 독자적 EUV 개발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전국가적인 반도체산업 육성 전략에 따른 예산과 인력의 투입으로 대안기술을 만들어낼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중국의 기술자립에 대한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이 14nm 이하인 첨단제품을 중국에서 생산하지 못하도록 기술·장비·제품 수출장벽을 세웠지만 화웨이가 규제를 뚫고 중국 파운드리업체 SMIC를 통해 생산한 7nm급 첨단 반도체를 사용한 '메이트60프로' 스마트폰을 출시한 데 뒤이어 나온 뉴스들로 파장이 크다.
화웨이와 SMIC가 14nm 수준의 낡은 기술과 중고 노광장비로 7nm급 공정을 구현한 데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를 거쳐 2017년 SMIC의 공동대표에 오른 대만출신 량멍쑹(梁孟松)이 핵심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952년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 UC버클리에서 전기공학·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반도체기업인 AMD를 거쳐 1992년 TSMC에 입사한 뒤 '핀펫(FinFET)공정' 기술 분야 최고전문가가 됐다. 그가 주도한 핀펫 기술을 바탕으로 TSMC는 파운드리의 정상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그를 영입했고(2011년 금감원 전자공시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임원급 연구위원으로 시스템 LSI 파운드리 TD 팀장) 2014년 TSMC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14nm 핀펫 공정을 개발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를 떠난 량멍쑹은 2017년 SMIC로 이직해 공동대표직에 올랐다. 미 정부의 반도체 제재 직전 중국이 보유한 반도체 공정 수준은 14㎚에 그쳤지만 화웨이와 SMIC가 자체 기술로 이보다 훨씬 진화한 7㎚ 칩을 만든 것은 멀티 패터닝 기술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량멍쑹의 역할에 방점이 찍힌다.
중국은 약 55조원에 이르는 3기 반도체 펀드를 통해 전세계에서 첨단기술과 더 많은 핵심 인재를 빨아들여 미국의 봉쇄망을 뚫으려 시도할 것이다. 테크인사이트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국산화율은 2012년 14.0%에서 2022년 18.2%로 증가했고, 2027년에는 26.6%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중국의 최대 메모리반도체 업체 양츠메모리테크놀로지(YMTC)는 중국정부의 9조3000억원에 이르는 보조금을 받아 미국 램리서치에서 수입하던 제조장비를 국산화하는 데 거의 성공했다고 밝혔다.
기술진화와 물량 앞세운 중국의 진격, K-반도체 설 자리는
중국의 화웨이 알리바바 바이렌 등은 고성능 첨단반도체 설계경쟁력에서 우리나라를 훨씬 앞선다. 대부분 칩이 PC와 서버는 x86 아키텍처 기반으로 이루어져 인텔과 AMD가 지배하고 있고, 전세계 반도체 아키텍처 라이센스의 80% 이상은 영국의 암(ARM)이 장악하고 있지만 중국은 지정학적 중립성을 지니고 오픈소스인 RISC-V을 통해 제재를 우회한다.
중국 반도체의 진격이 기술이나 물량 면에서 예사롭지 않다. 중국의 반도체 제조비중은 2020년 전세계 15%에서 2030년 24%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와 대만을 양적으로 능가하는 규모다. 중국의 기술진화와 물량을 앞세운 진격 앞에 K-반도체의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실질적인 대안을 세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