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K-노인복지시대를 열자

2023-10-05 12:02:32 게재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위기감이 고조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18.4%인 950만명으로 집계돼 지난해보다 50만명이 늘었다. 50년 뒤인 2070년에는 국민 절반이 고령인구가 된다. 전남 경북 전북 강원 부산 충남 등 6곳은 올해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2028년에는 세종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초고령사회에 도달하게 된다.

초고령사회는 경제성장의 둔화와 노인부양 증가, 노인빈곤과 질병, 노인소외, 세대 간 갈등 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연금개혁과 노동시장개혁을 통한 고용연장 등 여러 제도개선이 필수적이지만 이들 개혁에는 거센 반발이 뒤따른다. 표만 생각하는 정치권에 기대를 걸기 어려운 형편이다.

노인 50%,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어 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고령화 수준이 유사한 시점에 주요 국가별 GDP 대비 사회복지재정 현황은 일본 15.1%, 스웨덴 25.2%, 독일 26%, 덴마크 29.6% 등으로 우리나라(12.2%)보다 높다.

장기요양 재정이 상당 부분 시설급여에 소요된다는 점도 문제다. 2021년 기준 장기요양 재정을 1인당으로 환산하면 시설급여 이용자가 1598만원으로 재가급여 이용자 683만원보다 2배 이상 많은 혜택을 받는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는 꼴이다. 재가급여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돌봄서비스가 부족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노인요양시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의학적으로 지역에서 살 수 있는 노인의 60%가량이 요양시설에 입원해있거나 입소해있다. 건강이 악화되면 요양병원·요양원에 입소한 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나라 노인의 삶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인생의 마지막까지 존엄한 삶을 누리다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이루기 힘든 꿈이 됐다. 이제 거주지에서 여생을 보내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로 전환해야 한다. 노인실태를 조사하면 노인 60% 가량이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고 답한다.

올해는 1955~1963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마지막세대인 1963년생들이 은퇴하는 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베이비붐 세대는 714만여명이다. 이들은 이전과 달리 교육 수준과 경제적 여력이 있는 신노년층으로 돌봄 요구가 높고 다양하다.

초고령사회 노인돌봄은 시설 중심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통합돌봄이 이뤄져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보건의료·요양 돌봄 등을 통합적으로 지원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주거, 건강·의료, 요양·돌봄의 통합 제공이 필수적인데 전문 요양보호사, 간병인 등이 가정을 방문하는 재택돌봄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 특히 방문의료 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이 요구된다.

지역사회 중심의 노인돌봄이 2019년부터 4년 동안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을 통해 추진돼 광주 서구, 부천시, 전주시, 화성시 등에서 의미 있는 경험과 성과가 나왔다. 이러한 성과는 '노인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공적인 돌봄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공백을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이 제공하는 돌봄은 편리하지만 매우 비싸서 가족에 심각한 부담을 안긴다. 속담에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2021년 4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4년형을 선고받은 '강도영 청년'은 아버지의 병원비와 요양병원 입원비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시장-지역공동체 협력해야 노인복지시대 가능

정부의 공적돌봄과 시장, 그리고 지역 안에서 돌봄을 실천하기 위한 돌봄공동체가 어우러져야 한다. 아동돌봄에서 자리잡은 공동육아조합이나 육아 품앗이 등이 성인돌봄에도 활발하게 시도돼야 한다.

초고령시대 노인은 돌봄의 대상이자 돌봄을 하는 주체다. 두레·품앗이 같은 협동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해온 전통을 계승하고 정부의 공적돌봄과 시장을 결합해 나가면 K-방역에 이은 K-노인복지 시대를 열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노인을 돌보기 위해서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김기수 정책팀장
김기수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