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건강한 '노후 돌봄'을 위하여 | 1부-② 노인학대 47개 사건 72개 판결문 분석
요양시설 종사자들에 의한 집단폭행·방임 심각
처방된 약 복용지도 않고, 소변줄 3개월 지나도 안 갈아줘 … 치매노인 피해 증가 추세, 학대 뒤 숨지기도
2020년 5월 경기 파주의 한 요양원 2층에서 요양보호사가 80대 노인을 양손으로 밀쳐 넘어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피해 노인은 대퇴골 경부(넙다리뼈)가 부러졌다. 애초 12주간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피해자가 고령인 탓에 사망으로 이어졌다.
검찰은 요양보호사 A씨를 노인복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겼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형사7단독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항소했지만 2심을 담당한 의정부지법 형사항소2부는 이를 기각했다. A씨가 사고 직후 요양원에서 해고됐고, 피해자 유족과 합의한 점 등을 고려한 판결이었다.
흔히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한다. 노환이나 치매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맡아주는 요양원에서 노인학대는 물론 숨지는 사건도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신문이 최근 5년간 법원에서 선고된 노인복지법 위반 등 노인학대 사건을 검색해 이중 47개 사건을 추렸다. 법원 판결문검색시스템 등을 통해 1·2·3심 등 72개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71명이 기소돼 이중 6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노인학대가 벌어진 곳 중 요양원이 31개소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요양병원 7개소, 주·야간보호센터 4개소, 일반병원 2개소 순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재가 요양보호사에 의한 피해자 주거지 내 학대와 공공장소, 양로원 등에서의 노인학대 사건을 확인했다. 직종별로는 요양보호사가 35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요양원과 주야간보호센터 등의 대표, 운영자, 원장, 시설장 등 관리자들이 23명, 간병인 6명, 의료진(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6명, 사회복지사 1명 순으로 집계됐다.
개인정보 접근이 엄격해진터라 피해자들의 신상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학대가 이뤄진 시설은 요양병원이나 양로원이 아닌 요양원이 대부분이었다. 가해자는 요양보호사는 물론 시설장이나 사회복지사, 조리사 등도 있었다. 폭행에 의해 상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지만 방임으로 인해 사망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동안 요양원에서의 노인학대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개선이 됐다고 보여지지 않을 정도였다.
◆결박한 채 집단폭행 = 2021년 경북 김천 주간보호센터에서 벌어진 종사자들의 치매노인 집단 폭행 사건이다. 센터 원장 등이 80대 여성 치매 환자를 집단 폭행했다는 가족의 폭로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수사결과 센터 대표와 원장, 요양보호사 등 5명의 범행을 확인했다. 당시 피해자는 모두 치매 4등급의 80~90대 여성들이었다. 원장 등은 화물을 고정하는 데 쓰는 벨트로 피해자들을 결박했고 마스크를 입에 씌운 뒤 테이프로 봉하거나 손과 발로 폭행했다. 심지어 침대에서 떨어뜨리기도 했다. 대표와 원장은 징역 1년씩 선고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8개월과 6개월로 감형됐고, 나머지 요양보호사들은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충남 청양의 한 요양원에서는 요양보호사가 70대 노인 얼굴을 때리고 발로 차는 등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2020년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는 간병인이 입원 중인 70대 노인을 때린 혐의로 기소됐다. 노인은 간병인 도움 없이 제대로 생활할 수 없는 상태였다. 피해 노인은 치료를 받다가 3일만에 사망했다. 1심과 2심 모두 간병인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음식물 목에 걸려 사망 = 2019년 충북 제천의 한 요양원에서는 연하곤란증(음식물을 삼키지 못하는 증상)을 앓고 있는 노인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요양보호사가 먹인 음식물이 목에 걸려 호흡정지로 이어진 경우다. 대개 병원과 요양시설 등에서는 음식물을 씹지 못하는 입소자들에게 '갈은식'을 제공한다. 밥은 무르게 짓고, 반찬은 믹서기에 갈아야 한다. 국도 건더기 없이 국물만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요양보호사는 80대 여성 입소자가 음식물을 거부하는데도 10초 단위로 억지로 밥을 떠 넣었고, 구토 후 역류한 음식물이 피해자 기도를 막았다. 청주지법 제천지원 형사합의부는 요양보호사 2명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요양보호사 교육과 관리를 소홀히 한 요양원 운영자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같은해 경북 영양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요양원에 있던 80대 남성이 기도폐쇄로 인한 호흡정지로 사망했다. 이 남성 역시 연하곤란증이 있는데도 나물 건더기가 있는 음식을 요양보호사가 전날 먹였기 때문이다.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요양보호사는 90초간 국 6숟가락, 밥 2숟가락을 먹였다. 요양보호사는 환자가 식사를 끝내지도 않았는데 자리를 이탈했다. 법원은 소속 요양보호사에게 충분한 교육을 제공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요양원 원장에게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의료 방임 심각해 = 요양원은 의료인이 근무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 방임으로 입소자의 상태가 악화되는 일도 빈번하다.
2019년 전북 부안에서는 갑상선 암으로 절제술을 받은 뒤 입소한 80대 여성에게 처방된 호르몬제를 복용지도하지 않아 급성 호흡부전으로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검찰은 요양원 운영자와 요양원의 촉탁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로 재판에 넘겼는데, 1심은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을 맡은 전주지법 형사항소2부는 업무상과실치사가 아닌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를 인정해 요양원 운영자에게 벌금 1500만원, 촉탁 의사에게는 벌금 7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2019년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저혈당 증세를 보이는 70대 입소자를 급성호흡곤란증으로 사망케 한 경기 광명의 요양원 원장과 요양보호사 등 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요양원이 의료시설이 아니고, 요양보호사가 의료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심을 맡은 수원지법 형사항소7부는 1심을 깨고 3명 모두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요양원과 요양보호사의 보건복지부 매뉴얼, 표준 교재 등을 토대로 적절한 응급처치를 해야할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의료인이 아니더라도 돌봄의 책임과 의무를 진 시설 요양보호사라면 119 후송이나 진료 의뢰 등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2021년 창원지법 진주지원은 재가센터 소속 요양보호사에게 노인복지법 위반을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요양보호사는 자신이 돌보던 70대 노인에게 최소 3주마다 소변줄을 갈도록 도와야 하는데도 이를 3개월간 방치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패혈증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