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말뿐인 반도체산업 지원 정책

2023-10-10 12:08:44 게재
최근 만난 인공지능(AI) 관련 반도체 개발업체 최고 책임자는 "요즘 모든 게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1년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숨통이 좀 트였다"고 했었다. 펀딩이 되고 정부도 반도체 인력 육성 등에 적극 나서기로 했으니, 만성적인 자금난과 인력난 해소 조짐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정부 지원이 대폭 삭감됐다. 그는 평소 전임 문재인정권의 반도체 등 첨단기업 지원 방식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연구개발(R&D) 지원 총액을 크게 늘린 것은 반가운 일이나, 우선적으로 필요한 곳에 집중 지원을 하지 않고 전국민 재난지원금처럼 골고루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지원 기업 숫자를 몇배나 늘렸다. 그러다 보니 효과도 없고 나눠먹기 식이 됐다"고 문제점을 지적했었다.

반도체 개발업자 "중국 유혹이 강하다"

그는 현정부의 지원방식에 대해선 "전임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정확히 짚고 R&D 예산을 줄이더라도 필요한 곳에 집중화할 필요가 있으나 모든 지원예산을 동일하게 n분의 1씩 삭감했다"며 "특히 기획재정부가 반도체 인력 육성 예산을 줄인 것은 윤 대통령의 약속을 정면으로 파기한 것이나 대통령실은 이를 모르는 것 같다"고 탄식했다. 윤 대통령은 그간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라며, 특히 대대적 반도체 인력 육성을 약속해왔다.

그는 "펀딩을 받을 때는 3~5년 개발기간에 인건비가 얼마나 들어갈 것이라는 등 추산에 기초해 펀딩 규모를 정하고 받는다"며 "그러나 지난 1년여 물가폭등으로 인건비도 함께 크게 올랐고 게임업체의 인력 스카우트 바람까지 겹쳐 거의 배로 올랐지만, 신입사원의 능력은 솔직히 말해 기대치를 밑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러다 보니 추가 펀딩이 필요해졌으나, 국내 자금줄은 완전히 마른 상태"라며 "그러다 보니 '중국의 유혹'이 거세다"고 전했다. "우리가 투자하겠다"는 중국자본이 많다는 얘기다. 그는 "중국이 노리는 건 우리의 기술이다. 업계에선 중국투자는 받지 않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하지만 자금 상황이 워낙 급속히 악화되다 보니, 대만 등의 투자는 받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국익적 차원에서 볼 때 좋지 않은 기류"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평소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은 수출의 20%, 제조업 설비투자의 55%를 차지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대표 산업"이라며 반도체 초격차 유지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윤 대통령 지시와의 '미스매치'는 분명 적신호다. 윤 대통령이 직접 현장 점검에 나서야 할 대목이다.

지금 전 세계경제는 과거 산업혁명기와 정보통신(IT)혁명기를 능가하는 대격변기를 맞고 있다. 특히 AI 전기차 이차전지 드론 등은 미국의 전방위 견제에도 이미 중국이 압도적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 이공계 교수는 "인해전술 같다"고 비유했다. "13억 인구의 중국은 워낙 인적 자원이 많은데다가, 투자도 우리나라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규제완화를 해주는 간접적 방식이나 중국은 정부가 직접 주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기차 등에선 국내 시장도 더이상 중국산에서 안전지대가 아니다.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저가의 중국산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 가격을 2000만원 파격 할인 판매하면서 순식간에 외국수입차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싼 게 비지떡'이란 중국제품에 대한 기존 인식이 '가격 대비 괜찮은 제품'이란 인식으로 바뀔 경우 국내 메이커들은 더이상 애국심에 의존하기 힘들성 싶다.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현장 꿰뚫고 있어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생전에 경제각료들을 완전히 휘어잡았다. 그 수단은 '1000개의 최신 통계'였다. "임자, 지난달 선박 수주는 얼마나 됐어?"라는 식으로 주무 장관에게 '숫자'를 물었고 정확한 숫자를 답하지 못한 장관은 혼쭐이 나곤 했다. 이런 식으로 관리하다 보니 장관들은 자기 관할 분야의 돌아가는 현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해야 했고,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신속 대응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 "안보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자신을 "대한민국 1호 세일즈맨"이라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현장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현장 사람들을 밤에 불러 정확한 실상을 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비로소 현장이 원하는 지원과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박태견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