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건강한 '노인 돌봄'을 위하여 | 3부-② 네덜란드 케어팜에서 배운다

중증 치매노인 농장활용 돌봄, 만족도 높아

2023-10-11 11:27:32 게재

시간표 없이 입소전 생활습관 유지 … 의학적 접근보다 심리·정서적 케어와 삶의 질 향상에 초점

네덜란드는 치매나 질환후유증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노인과 신체·정신 장애인, 특수교육 대상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이 농장에서 활동하면서 돌봄을 받는 케어팜이 발달한 나라다.

거주형케어팜 드레이헤르스후버의 전경. 농장을 거니는 염소들이 보인다. 사진 바흐닝언케어팜연구소 제공


11일 조예원 바흐닝언케어팜연구소장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가 케어팜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바는 요양복지 대상 이용자들이 최대한 오랫동안 자기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가족 등 돌봄인력에게 부담을 덜 주고 이용자 삶의 만족도도 높이고자 함이다.

주간보호를 제공하는 대부분의 케어팜과 중증치매환자들을 위한 거주형케어팜에서 공통으로 찾아 볼 수 있다.

더 이상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워진 중증 치매환자들은 거주형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케어팜은 이런 분들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생활하지 않고 정원 축사 온실 휴식공간 등 농장 안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동식물을 가꾸며 내 집 같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한다.

◆개인이 원하는 생활방식 존중 = 거주형케어팜시설인 드레이헤르스후버를 통해 네덜란드 케어팜을 살펴보자. 드레이헤르스후버의 출입문을 들어가 사무실 등으로 쓰이는 건물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꽃과 나무로 꾸며진 녹색의 풍경이 펼쳐진다. 소규모로 다양한 작물을 키우는 공간도 있고 농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닭을 보면 농장임을 실감한다. 사람만 보면 다가오는 당나귀 조랑말 염소 돼지 등 다양한 동물이 어우러져 있다.

거주형케어팜 드레이헤르스후버의 입소자가 생활하는 집과 농장. 사진 바흐닝언케어팜연구소 제공


정원을 거닐며 노래를 부르거나 동물을 돌보는 치매환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집 앞에서 나와 밖에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할 수 있다. 정원을 기준으로 거주용 건물 반대편에는 작은 유리온실이 있어 작물을 재배하지만 날씨 좋지 않을 때에도 야외에 있고 싶은 분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보통 요양시설에서 지내는 경우 대개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하루를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식사 취침 시간을 지켜야 하고 심지어 쉬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드레이헤르스후버에는 시간표가 없다. 평소 밤 늦게 까지 깨어 있다가 아침까지 늦잠을 자는 습관이 있어도, 자기 전에 와인을 한잔 마시고 싶은 사람도 입소 전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원하지 않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필요가 없이 그날 기분에 따라 농장의 동물을 돌보거나 꽃밭을 거닐 수도 있다. 직원들과 함께 가사일을 하거나 작업실을 이용하는 등 좀 더 능동적인 일도 가능하다.

치매환자들이 거주하는 4개 건물에 각 7∼8명씩 거주하고 각자의 집에는 개인 침실 외에도 큰 거실과 주방이 있어서 거실에서 다른 거주자들과 돌보는 직원들과 함께할 수 있다. 모든 침실은 1인실이고 입소 전 사용하던 물품이나 가구를 가져다 쓴다. 식사는 가정집 식탁에서 한다.

드레이헤르스후버의 말기 중증 치매환자들을 위해 직원들은 모두 케어전문가로 대부분 간호사 자격이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 전문 의사가 방문한다.

개설자 헨크씨 부녀는 치매는 빈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병인데, 환자의 삶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불평등하게 주어지길 바라지 않았다. 드레이헤르스후버의 치매환자들은 네덜란드 일반 요양시설이나 케어팜을 이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복지재정을 통해 거주한다. 부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자 한 개설자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장기요양서비스 개방적 혁신 = 케어팜에서 생활하게 됨으로써 일반 요양시설에 생활하는 노인들보다 많은 신체활동을 하게 되면서 더 많은 음식과 수분을 섭취한다.

동물에게 먹이를 주거나 정원을 돌보고 집안에서는 빨래 개기, 저녁 식사를 위한 야채 자르기, 상차림 등 집안일을 도울 수 있다. 갓 조리된 음식의 냄새는 감각을 활성화하고 집처럼 느끼게 된다.

지난해 8월 '노화와 공중보건' 저널에 실린 '그린케어팜' 관련 연구에서는 케어팜의 주간 보육이 치매환자의 식이섭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케어팜의 물리적 환경이 OAZIS 치매도구에서 총 340점 중 314점을 받아 치매환자에게 적합하며 이용자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활동 가능성을 열어줬다.

조 소장은 "장기요양에 케어팜이 제격인 이유는 더 이상 내 집에서 생활하기 어려워진 중증질환의 노인이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이상적인 환경이기 때문"이라며 "국가차원에서도 일반시설보다 더 적거나 같은 비용으로 질적으로 더 우수한 요양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국내 장기요양에도 적극 도입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 7월 'BMC 노인의학'에 게재된 '장기요양시설 내 혁신적인 생활방식과 특성에 대한 개요' 연구에서는 네덜란드 내 장기요양 문화변화는 노인을 위한 혁신적인 생활방식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장기요양에서 기존의 신체적 케어를 위주로 하는 의학적 접근보다 심리정서적 케어와 삶의 질 향상을 강조하는 관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케어팜 또한 이런 측면에서 다뤄지고 있다.

["[창간 30주년 기획특집] 건강한 '노후 돌봄'을 위하여" 연재기사]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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