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대통령의, 대통령에 의한 '보선 참패'

2023-10-12 11:57:31 게재

그것은 '분노의 응집'이었다. 정부여당이 내세운 '거야심판론' '지역일꾼론'은 약발이 없었다. '대통령과 핫라인을 가진 후보'라는 여당의 대통령 세일즈는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얘기다.

이 동네가 원래 험지였다는 국민의힘 일각의 주장은 패자의 자위일 뿐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비호감이 역대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7.15%p차 선거결과는 윤석열정부에 대한 '분노의 응집'이라는 것 외에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단 1곳 선거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거의 '총선급'이다. 후유증도 총선 못지않을 전망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가 실제 투표로 확인됐다는 점이 여권에게는 가슴 아플 것이다. 30%대에 갇힌 윤 대통령 지지율로는 총선도 필패일 수 있다는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국면 전환시킬 정치력 보일 수 있는지

사실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은 윤 대통령에 의한, 윤 대통령의 선거였다.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당선무효 판결 이후 3개월 만에 윤 대통령은 특별사면·복권을 단행했고, 애초 무공천으로 가닥을 잡은 당을 밀어붙여 그를 후보로 내세웠다.

보궐선거를 둘러싼 환경도 사실상 윤 대통령이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민생경제, 집권 1년 반이 되도록 전 정권만 탓하는 '남탓정치', 기승전'이재명 사법처리'였던 대야관계, 일본정부 앞잡이 같은 오염수 논란, 뜬금없는 이념전쟁, 국민 눈높이를 무시한 인사 등은 모두 윤 대통령이 만든 '좌초자산'이다. 국민의힘 내부에 '이번 선거에서 져야 총선 공천에 대한 용산의 장악력이 약화될 것'이라며 심리적 태업을 벌인 의원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윤 대통령이 만든 지형이다.

이번 보궐선거의 함의는 분명하다. '분노의 응집'이라는 민심정황이 바뀌지 않으면 총선에서는 '정권심판의 쓰나미'가 밀어닥칠 수도 있다. 민심의 근간을 이루는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은데다, 투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윤 대통령에 대한 비호감이 그 가능성을 더한다. 이런 국면을 타개하려면 윤석열정부 실력으로 지금 상황을 돌파하거나, 아니면 '민심이 오케이 할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탓하고 국정운영의 틀을 바꿔야 한다. 윤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1996년 15대 총선을 앞두고 여당 신한국당 내부에서는 우려가 컸다. YS집권 3년차 중간평가 성격의 선거인데다, 1년 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이미 대참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등 각종 참사로 민심도 흉흉했다.

이 상황을 정면돌파한 것은 YS였다. YS는 자신에게 대들며 국무총리직을 내던진 이회창을 청와대로 불러 선거대책위 의장으로 모셨다.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등 이른바 '빨간색'의 민중당 출신들도 과감하게 영입했다. 이회창 영입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이 "괜찮겠느냐"고 우려하자 YS는 "선거는 이기고 봐야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YS의 이같은 승부수는 주효했다. 신한국당은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야당을 제치고 과반의석을 차지했다. 전체 총선 성적표는 여소야대였지만 신한국당은 그래도 1당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과연 윤 대통령에게 YS같은 정치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유승민 이준석을 용산으로 불러 총선을 맡아달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윤 대통령 모습으로 미뤄볼 때 그것은 "글쎄"가 아니라 "천만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다고 소신파 극우인 그가 YS의 민중당 인사 영입처럼 반대진영의 인사들을 끌어안을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총선에서 지면 보수진영에서도 애물단지 취급 가능성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여당은 상당 시간 홍역을 치를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 말마따나 김기현 대표체제가 물러나고 비대위가 꾸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여권 입장에서 보면 이번 보궐선거가 그랬듯이 총선 또한 '대통령의,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선거'다. 윤 대통령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시도도 말짱 도루묵일 수밖에 없다.

만약 총선까지 패배하면 윤 대통령의 후반 임기는 레임덕에서 허덕이게 될 것이다. '총선에서 지면 윤석열정부는 존재의미가 없다'고 모 칼럼니스트가 대표 보수지에 쓴 것처럼 윤 대통령은 보수진영에게서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이번 보궐선거 참패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지 정말 궁금하다.

남봉우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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