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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 거시 양자현상의 끝판왕
지난 몇개월 동안 '상온 초전도체'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국내 연구진이 상온 상압 초전도물질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이목을 끌게 된 것이다. 'LK-99'라고 명명된 이 물질을 확인하기 위해서 세계적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됐다. 풍문에 민감한 주식시장에서 상온 초전도와 관련이 있는지도 불분명한 종목들의 주가가 춤을 추기도 했다. 도대체 초전도가 무엇이길래 이런 소동이 벌어진 것일까?
전류를 흘릴 때 사용하는 전선에는 모두 저항이 있고, 흘려주는 전류의 제곱에 비례해서 열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다. 발전소에서 가정까지 전력을 전송하거나 모터를 돌려서 동력을 얻을 때 이런 에너지 손실은 적을수록 좋다. 따라서 저항이 작거나 없는 물질로 만든 전선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초전도는 전선에 전류가 흐를 때 특정온도(임계온도) 이하에서 저항이 완전히 없어지는 현상이다.
양자역학 이론에서는 금속 내부의 원자가 완벽하게 규칙적인 결정구조이고, 불순물이나 결함도 전혀 없으며, 원자의 떨림도 없다면 저항이 없어진다고 한다. 이런 완벽한 전도체는 실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더라도 초전도체라 하지 않는다. 초전도체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양자현상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 발전으로 확인된 초전도 현상
알려진 것처럼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오네스(H. K. Onnes)가 1911년에 끓는 점이 절대온도 4.2K(영하 269℃)인 헬륨을 액화한 후 온도에 따른 금속의 저항을 측정하다 수은에서 초전도 현상을 처음 발견했다. 이 공로로 오네스는 191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다.
이후 다른 여러 물질에서도 초전도가 발견 됐으나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라 물리학자들이 이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결국 1957년 바딘(J. Bardeen), 쿠퍼(L. Cooper), 쉬리퍼(J. R. Schrieffer)가 발표한 BCS 이론으로 초전도의 원리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이 공로로 197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바딘은 1956년에 트랜지스터 발명으로 받은 후 두번째 노벨 물리학상이었다. 이후 노벨 물리학상을 두번 받은 사람은 아직 없다.
BCS 이론에 의하면 일반적인 도체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것을 방해하고 전기저항의 원인이 되는 원자의 진동이 초전도체에서는 전자들을 쌍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전자가 쌍으로 묶여 움직이면 저항이 없어진다. 이런 현상에 대한 이해는 금속 내부의 전자처럼 아주 많은 입자의 거동 전체를 양자역학적으로 다루는 다체계 물리학의 눈부신 발전이 없었다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영역이다.
통상 원자 수준의 미시세계에서만 뚜렷이 드러나는 양자역학이 전선에 전류가 흐르는 거시 현상에 그 신묘함을 발휘해 전기저항을 '0'으로 만든 것이다. 거시 양자현상의 끝판왕이 바로 초전도 현상이다.
어떤 물질의 초전도 임계온도가 높으면 초전도 상태 유지를 위한 비용이 낮으므로 이런 물질을 찾기 위한 연구가 계속되었는데 1986년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물질에서 초전도가 발견된다. 스위스 취리히의 IBM연구소의 베드노르츠(G. Bednorz)와 뮬러(K. A. Muller)가 란타늄-바륨-구리 산화물이 임계온도 35K 초전도체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세계적으로 치열한 연구 경쟁이 일어나면서 임계온도 92K의 이트륨-바륨-구리 산화물과, 현재 최고 기록인 138K의 수은-바륨-구리 산화물이 잇달아 발견되었다. 이런 물질을 '고온 초전도체'라고 하는데, 임계온도가 액체질소의 끓는점 77K보다 높아 맥주보다 저렴한 액체 질소를 사용해서 초전도 상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상온(약 300K)보다는 훨씬 낮은 온도다.
고온 초전도체는 발견된지 거의 40년이 되지만 BCS 이론이 잘 적용되지 않아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압력이 높아지면 임계온도가 높아지는 현상에 주목해 200만 기압의 초고압에서 임계온도 290K의 란타늄-수소 화합물도 발견됐다.
상온 상압 초전도체 있다면 인류문명 바뀔 것
이처럼 상온 상압 초전도체가 있다면 전류를 흘릴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이 사라지므로 현대 문명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과학자들이 이런 초전도 물질을 찾기 위한 노력을 지금도 계속하는 이유다.
상온 상압 초전도체가 아닌 것으로 결국 밝혀지고 있는 LK-99의 과학적 문맥을 독자들도 이제 파악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