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 수능 현장반응
"전 과목 상대평가 병기, 등급만 남고 성취도 실종"
학교 수업과 평가에 제약 줄 변별 부담 … 교사들 민원 시비 최소화할 '지필평가'로 기울 듯
교육부가 2028 대입 개편안 시안을 발표한 직후 현장 교사들 모임인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와 서울중등교육과정연구회는 12일 온라인 긴급 세미나를 열었다. '2028 대입 개편안에 따른 대입과 고교학점제의 방향'을 주제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는 2200여 명의 교사들이 사전 신청할 만큼 현장의 관심이 적지 않았다. 학교 교육과정과 진학을 연구해온 김용진 경기 동대부영석고 교사 사회로 장동만 서울 상일여고 교사, 윤희태 서울 영동일고 교사가 시안의 주요 내용을 진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세미나에서는 특히 공통 과목은 상대평가로, 그 외 선택 과목은 모두 5단계 성취평가로 제시된 기존 교과 평가 체계가 전 과목 상대평가 병기로 뒤집힌 데 따른 우려가 컸다. 수업과 평가 설계의 주체인 교사들은 석차등급이 대학의 주요 전형 자료로 활용될 경우 변별에 대한 부담으로 성취평가제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입 안정성을 지나치게 고려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번 시안에 대한 현장 교사들의 진단과 보완 방안을 들어봤다.
'문과 침공' 해소될까? 심화수학 도입 현실 가능성은?
■ 수능 국어와 수학에서 선택 과목이 폐지된다. 현재의 선택형 수능에서 비롯된 응시 과목에 따른 점수 유불리가 야기한 소위 '문과 침공' 문제가 해소될까?
윤희태 교사 : 선택형 수능이 처음 나왔을 때 이미 예상된 문제였다. 점수 구조상 유불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현재, 수학과 과학 중심으로 이수하는 학생들이 교과 상위권에 더 많이 포진해 있고 자연계를 희망하는 학생들의 성적이 더 좋은 편이다.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기준으로 교과 평균 1.9등급까지 학생의 2/3가 자연계를 희망한다. 수능에서 선택 과목을 폐지하면 점수 유불리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같은 구조 때문에 수학, 과학 중심으로 이수한 상위권 학생들이 대학을 상향하기 위해 인문계 모집 단위로 지원하는 현상은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 수학 선택 과목에 절대평가 방식의 '미적분Ⅱ+기하'를 심화수학으로 신설하는 추가 검토안도 제시됐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안이라고 보나?
장동만 교사 :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해 도입하겠다면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으로 출제 범위가 한정된 사탐과 과탐도 같은 방식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올 수 있다.
쉬운 결정은 아니라고 본다. 만약 도입된다면 심화수학 응시 여부가 계열 구분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대학이 선발 과정에서 지원 자격으로 제시하면 더 심화될 것이다. 절대평가로 도입되면 점수화시키기보다 응시 여부를 지원 자격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도 수능에서 수학 응시 과목인 '미적분'과 '기하'가 거의 자격 기준화되어 있다. 수학 선택 과목과 오답 수에 따라 정시 지원 대학 범위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다. 심화수학이 도입되면 실질적 영향력은 현재보다 높아질 수 있다.
사탐·과탐 통합 응시 절대평가로 사교육 잡아야
■ 사탐·과탐 통합 응시가 이번 개편 시안에서 큰 쟁점이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출제해 융합적인 학습을 유도한다고 했다. 이들 과목의 내용 체계상 수능 과목으로 적절하다고 보나?
장동만 교사 : 대학 선발 목적으로서의 수능이라면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현재 수능에서도 노출된 문제지만 몇년 지나면 출제 내용이 고갈될 수밖에 없다. 융합적 문제 출제가 강화되면 오히려 학습 부담과 사교육 영향력이 높아질 수 있다. 시안에서 제시된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이런 우려를 그나마 해소할 수 있다.
윤희태 교사 : 시안에 '융합 평가로 개선하고, 변별력은 유지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서 자체가 이미 수능 출제를 배제한 상태에서 개발되어 있다. 상위권 변별을 나눌 만큼 내용 체계가 되어 있지 않다. 수능 출제 과목으로 활용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 변별력을 확보하려다 보면 내용 체계에 없는 부분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미 사교육에서 이제는 중3부터 사회, 과학 과목을 모두 선행 학습해야 한다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 사탐·과탐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변별력 확보가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어떻게 보나?
윤희태 교사 : 절대평가로 전환한다고 해도 변별은 가능하다. 대학마다 선택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절대평가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본다. 상위권 대학의 경우 사탐, 과탐을 모두 반영하겠지만 대학에 따라 한 영역만 반영하거나, 잘 본 영역 하나만 반영하는 등 자율성에 맡기면 된다. 지원자 특성에 따라 더 많은 변별이 요구되는 곳은 두 영역 모두 선발보다 모집이 더 중요한 대학은 한 영역을 선택적으로 반영하게 하면 변별은 충분하다.
전 과목 5등급 상대평가 병기 급선회, 여파는?
■ 지난 6월 발표된 공교육 경쟁력 강화 방안에는 이미 2028학년 대입에 적용되는 교과 성적은 선택 과목의 경우 모두 성취평가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사이에 대입 제도의 근간을 흔들 큰 변화가 없었는데, 급선회했다. 어떻게 보나?
장동만 교사 :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학교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지막 단계가 고교학점제 성취평가제 전면 도입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데 시안에서 다시 평가 방식 통일을 명분으로 모든 과목에 5등급 상대평가 병기를 제시했다. 이제 학교 현장에서는 모든 교육 활동의 기준이 상대평가가 될 것이다. 교사의 수업과 평가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교사의 평가 역량을 강화하겠다지만 석차등급이 병기되는 순간 교사들은 서술형이나 과정 중심 평가 등 선진화된 평가 방식이 아닌 민원 시비를 최소화할 지필평가로 기울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문제다.
■ 대학이 교과 성적을 반영할 때 성취도보다 등급을 우선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교실을 황폐화시키는 9등급제에서 선진화된 5등급제로 개편한다'고 했는데, 과연 경쟁이 완화될까?
장동만 교사 : 대학은 선발이 목적이다. 굳이 복잡하게 성취도별 분포 비율이나 평균 등을 고려하기보다 상대평가 수치로 선발하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 공정성 시비도 피해갈 수 있다고 볼 것이다. 좀 더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학생들의 선택도 쏠릴 수밖에 없다.
윤희태 교사 : 현재 석차등급이 나오는 과목이 보통 20개 과목 내외다. 진로선택 과목을 많이 들으면 10개 과목 후반인 경우도 존재한다. 모든 과목에 상대평가를 병기하면 석차등급이 나오는 과목 수는 훨씬 늘어나게 된다. 게다가 고교학점제에서는 학기별로 한 과목이 끝난다. 현재 1등급 비율은 4%로 20개 과목을 1등급을 받는 것과 시안대로 1등급 비율인 10%로 30개 과목을 1등급을 받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쉬울까? 학생들의 과도한 경쟁을 막아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상대평가 5등급제에서 학생부교과전형의 변별력이 유지될 수 있을까? 동점자가 늘어날 거라는 예측이 많다.
윤희태 교사 : 최상위 학생들이 지원하는 의대나 선호도 높은 모집 단위 등은 아무래도 서류 정성 평가나 면접 등 다른 평가 요소가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대학은 교과 100% 전형으로도 충분히 변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학생 모집이 어려운 대학들은 오히려 상대평가와 성취평가를 병행해 사용할 수도 있다. 현재 지역 사립대학들이 진로선택과목 반영을 늘리고 있는데 산출되는 성적이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개정 1등급의 상위 그룹이 지원하는 대학들은 변별이 어려울 경우 다른 전형 요소를 추가하고, 개정 2등급 학생들이 주로 지원하는 중위권 대학들은 상위 대학들과 동일한 지원자 풀을 유지할지 고민할 것이고 개정 3등급 이하 학생들이 지원하는 대학들은 상대평가와 성취평가를 병행할 것으로 예측한다.
고교학점제 취지, 최소 성취 수준 보장 무력화
■ 2028 대입 개편안은 고교학점제를 위한 것인데 상대평가 병기로 인해 성적 중심의 과목 선택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고교학점제의 취지 중 하나인 최소 성취 수준 보장에 역행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어떻게 보나?
장동만 교사 : 진로선택 과목이 성취평가제로 전환되면서 수행평가 100%로 운영되는 과목도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러나 상대평가에 대한 부담이 생기는 순간, 교사들은 실험이나 탐구 중심 수업, 학생들의 협업 능력 등을 평가하는 정성 평가는 최대한 배제하고 지필평가 비중을 늘려 정량 평가 쪽으로 치우치게 될 것이다.
평가 민원이 늘수록 수행평가 100% 과목은 점차 사라질 것으로 본다. 현재 학교에서 최소 성취 수준을 담당하는 부서를 맡고 있어 고민이 더 많다. 상대평가가 대입 전형 자료로 활용된다면, 교사 입장에서 성취도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할 수 없다.
성취평가제가 무력화된다면 최소 성취 수준 보장도 형식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등급을 내려면 줄을 세우기 위해 평가 난도를 올릴 수밖에 없는데, 성취도와 성취 수준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제도가 될 개연성이 크다.
김기수 기자·정애선 내일교육 부설 교육정책연구소 헤리티지내일 소장 as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