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민생개혁, 의대증원부터 해결해야

2023-12-04 12:01:24 게재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확대 개편하면서 국정쇄신의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3대개혁을 거듭 강조했지만 아직 이렇다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 개혁의 정부 최종안은 알맹이가 빠진 맹탕에 그쳤고, 노동개혁의 주요 사안인 근로시간 개편도 주 최대 연장근로 시간을 어떻게 설정할지에 대한 수치 제시는 없었다. 교육개혁은 총론은 제시되었지만 각론에 따른 실행 매뉴얼이 부재해 현장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이번에 부활한 정책실은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의대정원 확대 문제에서 성과를 내기 바란다.

정치권, 의대증원 추진 한목소리로 찬성

정부는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의대정원 확대 규모를 확정한다는 입장이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정원 확대에 반대해 진료거부 등 집단행동도 불사한다며 맞서고 있다.

우리 사회는 2025년 노인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의대정원 확대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지방에는 의사가 부족해서 응급실을 운영하지 못하는 병원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보니 응급실을 찾지 못해 구급차 안에서 환자가 숨을 거두는 '응급실 뺑뺑이 사고'가 이어진다. 지방 의료원들은 수억원대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를 못 구한다. 수도권에도 소아청소년과나 산부인과 병원이 잇따라 문을 닫는다. 대학병원들조차 마취과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제 때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고수익이 보장되는 성형외과 등에는 젊은 의사들이 몰린다.

2021년 우리나라 의사 1명이 진료한 평균 환자는 6113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았다. 의사 부족 때문이다. 의사와 충분한 진료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한 지표(2020년 기준)에서도 한국은 OECD 19개 회원국 중 15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학전문대학원을 포함해 40개교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된 상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현 수준의 의사 공급을 지속할 경우 2035년에는 최대 2만7232명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2025년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린다 해도 학부 과정과 인턴십, 레지던트 프로그램을 거쳐 의사가 되기 위해 10~15년 정도가 소요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의사협회 등은 의료법상 진료거부에 해당하는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등 반발을 이어간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전국의사대표자 및 확대 임원 연석회의를 열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증원을 추진하면 파업에 대한 전 회원 찬반투표를 즉각 실시해 파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문재인정부 때인 2020년,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연간 400명씩 총 4000명을 증원하는 방안을 추진하려 했지만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거부, 전공의 파업 등 반발로 무산됐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우선 국민의 의대증원 찬성이 매우 높은데다 여야 정치권, 시민사회 등도 강력히 정책 추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이전과 달리 의사단체의 파업 추진 명분과 동력이 약하다. 의협은 동네의원 등 개원의 중심 단체로 2020년 당시에도 집단휴진 참여율이 한자리수에 불과했다.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은 의협과 달리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보건의료노조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82.7%는 의사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의대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의사 출신 일부 의원을 제외하고는 한목소리로 의대증원 추진에 찬성한다. 또 병원계와 더불어 의과대학들도 2배 안팎의 의대증원을 희망한다는 수요조사에 응했다. 의대가 있는 전국 40개 대학들은 2025년 2151~2847명, 2030년 2738∼3953명 증원을 희망했다.

부활한 정책실 협의 조정 기능 강화해야

정부가 의료계 반발을 뛰어넘어 의대정원 확대를 단호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조건이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은 상황이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보건복지부는 이번 의대정원 수요조사 결과 발표를 두차례나 연기하는 등 혼선을 빚었다. 이번에 부활한 정책실의 사회수석의 협의·조정기능을 강화하면 추진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 여론에 귀 기울이면서 의료단체와 협의하고 환자단체 등 의료 수요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필수의료 확충과 제도 개선을 착실히 추진하길 바란다.
김기수 정책팀장
김기수 기자 기사 더보기